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 지난 1, 2회 내용은…언론사 최초로 기획부동산에 입사해 ‘장 차장’이 된 장 기자. 그 세계엔 넉넉지 않은 이들에게도 팔 수 있는 땅이라며 당당하게 영업하자는 이들이 있다. 땅도 ‘당당’해보였다. 길도 없는 논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임야가 “지대가 높아 홍수가 와도 안정적이고 농작물 수입이 없기에 세금이 적고 흙을 파 팔 수도 있다”고 홍보되고 있었다. 부동사 기획자들은 우리가 파는 땅이 “가수 태연 가족이 산 땅보다 좋은 땅”이라며 유혹과 압박을 병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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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취업한 기획부동산 ㅈ사에는 중국동포도 있었다. 중국 연변 출신의 하영순(가명)씨가 부동산업계에 투신한 지는 2년 정도 된다. 50살 이주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식당 일을 전전하다 평소 관심사였던 아파트 분양 대행사에 취업했고 “한국에서 돈 벌려면 부동산을 해야 한다”는 말을 공인중개사한테 들었다.
들쑥날쑥한 높낮이 억양에 어눌한 한국어 말투 때문에도 하씨는 취업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 ‘세계’에 오니 일순 사내 유일의 중국인 영업이 가능한 ‘중국어 능통자’로 대접받았다. 중국동포들이 모이는 각종 모임에 참석해 연락처를 주고받은 다음 이들을 상대로 땅을 팔았다. 중국 사람들도 한국 부동산은 오른다고 생각해서 접근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회사에서 판매하는 땅을 팔 뿐 사진 않는다고 했다. 2019년 5월 이전 회사로부터 충남 서산시 팔봉면 대황리에 있는 보전관리지역 ‘임야’를 추천받아 612만원을 주고 34평을 ‘지분 쪼개기’(한 필지를 놓고 다수가 공유지분을 사들이는 투기 행위)로 사들였다. “회사에서 앞으로 남북관계가 좋아진다면서 연천 땅을 팔아서 사려고 했는데 외국 사람이라서 등기가 안 나오는 거야. 그래서 팔봉면 이 땅을 (회사가) 추천해 샀어.” 600만원이 넘는 비싼 수업료를 낸 뒤 기획부동산 판매 물건지의 태반은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업계를 떠나진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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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급할수록, 땅을 통한 반전의 욕망이 클수록 업계에서 성실했고, 믿음 또한 두터웠다. 기획부동산 ㅎ사에서 만난 심혜선(가명·36) 차장은 코인투자로 1억원을 잃었다
. 그의 꿈은 서울에서 카페 하나를 차리는 것이었다. “만회할 카드는 부동산뿐”이라는 말과 함께 기획부동산에 입사한 그는 며칠 만에 “부동산업이 돈을 많이 벌고 자영업보다는 낫겠다”, “부동산을 배워서 돈을 벌게 된다면 아예 전업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보다 담당 부장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아파트 가격은 지금 꼭짓점이고 앞으로 대세는 공공임대인데 굳이 고점에 사기보다는 여유 자금으로 땅에 투자하는 게 낫다고 설득해.” 영업4부 박정자(가명) 부장은 ‘토지 대신 아파트에 투자하고 싶다’는 심 차장 친구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고선 말했다. 114 영업(휴대전화 번호가 담긴 서류를 보고 무작위로 시도하는 전화영업)이 쉽지 않다는 걸 이내 깨달은 심 차장은 지인과 가족 상대로 영업을 시작했는데, 때로 박 부장과 상황극을 모의하기도 했다. 친구들과 식사 때 박 부장이 전화 걸어 땅 이야기를 꺼내 흥미나 관심을 이끌어낸다는 시나리오를 짜는 식이다. 심 차장은 지인, 가족들에게 외면당할 때마다 “우리가 첫 고객이었고 그다음이 우리 지인인 것 같다”고 푸념하면서도 “여기는 정말 좋은 땅을 선별해서 파는 것 같아요. 우리 땅 좋은 거 맞죠?”라고 물었다. “누나가 기획부동산에서 사기를 당한 적 있는데 수법이 똑같다”는 친구의 조언은 한 귀로 듣고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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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사 입사 동기였던 허성태(가명·42) 차장은 입사 첫날부터 박 부장 앞에서 연신 한숨을 쉬어댔다. 전직 보험 영업맨으로 ‘지인 판매’의 험난함을 익히 아는 듯 보였다. 인천에 사는 그는 왕복 4시간 출퇴근 사투를 감내하며 강남 부동산업체에 진입했다. “부동산 한번 제대로 배워보려면 강남 바닥에서 굴러야 한다”고 믿었다. 지방 2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상경했지만, 바라던 사무직이 되기에는 스펙이 늘 발목을 잡았다. 제대로 된 사무직이 되어보지 못한 채 주차관리요원, 호텔 서비스업, 공사판 일용직, 택배 분류 작업까지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전전했다. 그러다 허리까지 다쳤다. “스펙 없고 마흔 넘으면 몸 쓰는 일 말고는 받아주는 곳이 없어요. 부모님이 공부 열심히 해서 대기업이나 공무원 하라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허 차장은 티브이 속 공인중개사가 빌딩 투자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부동산 투자’ 쪽 진로를 결행하게 됐다고 했다. 틈날 때마다 박 부장과 동료들에게 <에스비에스>(SBS)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부동산 컨설턴트 얘기를 꺼내고선 “저도 그 사람처럼 빌딩을 전문으로 하는 부동산 배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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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지인·본인 영업 판매로 굴러가는 기획부동산의 본질을 파악하게 되면 감당하지 못하고 떠나는 이들이 생긴다. 심 차장, 허 차장 등 3040 신입 차장들은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퇴사했다. 1000만원이 없거나 빌릴 수도 없는 사람은 회사에서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땅에 대한 믿음을 버렸단 말은 아니다. “전 아는 사람도 없어서 다니기 어렵게 됐어요. 좋은 회사인 것 같으니 필수씨도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한번 잘 다녀봐요.” 허 차장은 전화로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퇴사 뒤 만난 심 차장의 말은 더 깊이 박혔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임원과 부장에게) 잘 보이고 싶었어요. 돈이 없어서 그만뒀지… 땅을 정말 사고 싶었거든요.”
이를 아는 탓인지 박 부장은 부서 차장들이 나갈 때마다 “(예전 나간 이들도) 우리 토지가 좋으니 돈 생기면 꼭 사러 온다고 한다”며 ‘땅에 대한 욕망’을 만져주고 격려했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편집자주 ‘부동산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신화의 나라. 부동산 성공담이 차고 넘치지만 부동산 게임에서 모두가 ‘승자’가 될 순 없다. 부동산이란 이름의 욕망 전차에도 ‘꼬리칸’은 있게 마련이다. 남들만 돈을 번다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중상류층을 올려다보기만 하던 이들마저 영혼을 끌어모아 부동산 투기 열차에 탑승한다. 이들을 꼬리칸으로 안내하는 이들이 바로 ‘부동산 기획자’다. 돈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을 자극해 쪼개진 ‘땅’의 주인으로 만들고, 2천만원에 갭투자 아파트를 사도록 이끈다. 돈이 적다고 욕망마저 가난할 순 없는, 그럼에도 부동산 생태계에서 끝내 포식자가 되지 못할 이들, 그 2천만원짜리 욕망을 기획하고 판을 짜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 4회에선 부동산 기획자들이 5060 여성들을 우대하는 이유, ‘장 차장’이 취재를 위해 취업했다는 것을 알게 된 기획 부동산의 관련자들의 반응 등을 소개합니다. 4회는 23일 오후 2시 <한겨레> 홈페이지에 공개합니다. www.hani.co.kr
장필수 김완 기자
fe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