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승차장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장애인권리예산 및 관련법 개정 요구에 대한 인수위 답변 촉구 삭발투쟁 결의식에서 삭발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30일 오전 8시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승강장. 휠체어에 앉은 이형숙(55)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회장이 칼을 쓰듯 철제 사다리를 목에 걸었다. 무거운 쇠사슬이 사다리와 이 회장의 몸을 한데 묶었다. 2002년 9월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장애인 활동가들이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 선로를 가로막았을 때도 같은 모습이었다. “우리가 처음 이동권 투쟁을 시작하면서 지하철 선로에 내려갔다. 해산을 시도하는 경찰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쇠사슬과 사다리를 건 채 버텼다. 제가 시민들에게 욕설을 들을 때마다 하는 말이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인데, 왜 장애인은 세상을 살면서 매번 미안해야 하나. 우리는 21년 동안 외쳤고 작게나마 세상을 바꿔내고 있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더 끈질기게 외치겠다.”
행위극이 끝나고 이 회장의 삭발식이 시작됐다.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지난해 12월6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승차 시위를 벌여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전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및 더불어민주당과 간담회를 가진 뒤 승차 시위를 잠정 중단했다. 대신 다음 정권 정책 방향을 잡는 인수위에서 책임 있는 답변이 나올 때까지 매일 한명씩 머리를 밀겠다고 했다. 이발기에 잘려나간 이 회장의 머리카락이 인수위에 장애인권리예산 약속을 요구하는 문구가 적힌 상자에 담겼다. 지켜보던 휠체어 장애인 7명이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한 비장애인 활동가는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보지 않으려 했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장이 삭발하기 앞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했던 활동가들의 모습을 재현한 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저희의 외침은 권력자들이, 힘 있는 자들이 조롱하고 왜곡하라고 외쳤던 게 아니었다. 21년간 계속된 저희의 외침은 진심이었고, 장애인이 감옥 같은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절규였다. 윤석열 당선인과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요구안에 대한 확실한 답변을 내놓으라.” 삭발이 끝난 뒤 눈시울이 붉어진 이 회장이 말했다.
그는 2020년 8월에도 문재인 정부가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은 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며 삭발을 했었다. 정다운 전장연 활동가는 “문재인 정부는 약속을 안 지켰고, 지금 인수위는 약속 조차 안 하고 있다”고 했다.
이 회장과 장애인 등은 삭발을 한 뒤 경복궁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충무로역에서 지하철 3호선으로 환승한 뒤 혜화역에서 내려 선전전을 진행했다. 장애인단체에 대한 부정적 여론 조성을 위한 대응 문건으로 논란이 됐던 서울교통공사는 “전장연 지하철 행사로 열차가 지연되고 있다”는 안내 방송을 했다. 그러나 이날 별다른 열차 지연은 없었다.
한편 전장연은 장애인단체 요구에 혐오를 덧씌우는 발언을 이어가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사과하지 않으면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이 대표는 전장연이 인수위를 만난 후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행동을 당분간 멈추겠다고 하자 비난 여론 압박과 자신의 발언로 인한 승리라며 페이스북에 자찬글을 올렸다. 이 대표가 공개 사과하지 않으면 별도로 국민의힘과 이 대표를 향한 투쟁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여러 단체 활동가들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역 승강장에서 열린 출근길 선전전에 참석해 있다. 김혜윤 기자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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