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23일 전국 법관대표들이 사법농단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2차 임시회의에 참석해 의장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농단이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2011년 9월~2017년 9월) 사법부 행정 업무를 맡는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하고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사건이다. 2017년 2월 법원행정처에서 일하게 된 이탄희 당시 판사가, 판사들의 사법 개혁적 학술대회를 저지하라는 업무 지시를 거부하면서 ‘판사 뒷조사 문건’의 존재가 처음 알려졌다. 세 차례의 법원 내부 진상조사(2017년 4월, 2018년 1월·5월)가 진행됐고 검찰 수사로 2018년 11월~2019년 3월 전·현직 판사 14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번(사법농단) 사태의 배경은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한 사법부가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에 안주함으로써 관료제적 경향을 더욱 심화시킨 점에 있다.”
양승태 대법원(2011~2017년)의 사법농단 사건을 조사한 대법원 특별조사단은 2018년 5월 보고서에서 ‘사법부의 관료화’를 근본 원인으로 꼽았다. 지방법원 부장판사 중 소수만 승진시켜 차관급 대우를 부여하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는 법관을 줄세워 인사권자에게 종속시키는 폐단이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서울의 한 판사는 “많은 엘리트 판사가 사법농단과 같이 위헌적인 일에 참여하게 된 배경에는 ‘승진’과 ‘선발’을 통해 이뤄진 대법원장의 ‘판사 통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사법농단 사건 직후 취임한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부 관료화를 해소할 목적으로 일선 판사들이 투표를 통해 지방법원장을 추천하는 ‘법원장 추천제’를 도입했다. 2019년 대구·의정부지법에서 시범 실시해 올해 전국 20개 지방법원으로 확대됐다. 2021년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가 폐지됐다.
대법원과 국회 등은 사법농단 사건을 실행한 법원행정처의 기능과 권한을 분산하기 위한 대안도 여럿 내놨다. 각각 세부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법원행정처 기능을 ‘사법행정회의’(의사결정)와 ‘법원사무처’(집행)로 나누는 게 기본 뼈대다. 그러나 사법농단 사건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자 국회에서 외면당했고 법원의 동력도 약화했다.
수직적 인사구조가 사라지면서 법원 분위기는 바뀌었다.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 안에도 엠제트(MZ)세대의 수평적 조직 문화가 정착됐다”며 “복장만 보더라도 과거에는 무조건 정장에 흰색 와이셔츠였지만 요즘은 재판 없는 날, 등산복을 입고 출근하는 판사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또 다른 판사는 “고등법원 부장이 되지 않더라도 ‘재판 열심히 하면서 일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재판 기간이 늘어난 것을 수평적 문화의 부작용으로 지적한다. 1심 민사합의 평균 처리 기간은 2016년 10.7개월에서 2021년 12.1개월로 1.4개월 늘었다. 한 부장판사는 “승진제가 없어지니 열심히 일할 동력이 떨어지고 부장판사는 배석판사들과 껄끄러운 관계를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차기 대법원장 후보로 꼽히는 오석준 대법관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법원장 추천제와 고등부장 승진제 폐지를 재판 지연의 원인으로 짚으며 비판적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오는 9월 김명수 대법원장이 퇴임하면 법원이 빠르게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한 부장판사는 “사법행정권자의 통제력을 높여야 한다는 시각은 사법관료제에 대한 향수”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고법판사는 “법관들이 사법농단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됐는지 알지 못한다”며 “교훈을 얻지 못하면 사법농단 사건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혜민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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