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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현장리포트] “모두 나를 싫어했다”-연쇄살인 심리분석 /전진식

등록 2006-04-25 15:23수정 2006-04-25 16:07

지난달 27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발생한 ‘세자매 살해사건’ 등 8건의 강도살인·상해 사건의 유력 용의자인 정아무개(37)씨가 24일 오후 경찰의 현장 확인을 끝내고 영등포경찰서로 들어오고 있다. 정씨는 지난 22일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가정집에 침입해 다시 강도질을 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발생한 ‘세자매 살해사건’ 등 8건의 강도살인·상해 사건의 유력 용의자인 정아무개(37)씨가 24일 오후 경찰의 현장 확인을 끝내고 영등포경찰서로 들어오고 있다. 정씨는 지난 22일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가정집에 침입해 다시 강도질을 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연합뉴스
“모두 나를 싫어했다.”

지난 22일 ‘서울 서남부 연쇄 살인 사건’ 용의자로 잡힌 정아무개(37)씨의 독백이다.

지금까지 그가 저질렀다고 경찰에 털어놓은 사건은 모두 10건이다. 정씨에게 둔기로 맞거나 흉기에 찔려 숨진 사람이 5명, 크게 다친 사람은 10명에 이른다. 추가 범행 여부도 여전히 수사중인 점을 고려하면 ‘제2의 유영철’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리 이상하지 않다.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정씨는 1969년 한 지방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의 3남4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니다 가족들과 인천으로 이사를 와 이제껏 살고 있었다. 89년 특수강도 혐의로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후 바로 육군에 입대해 92년 3월 제대했다.

제대 뒤엔 한 제과업체 공장에서 두세 달을 일했으나, 그 뒤로는 더이상 ‘노동’하지 않았다. 정씨는 골방에 틀어박혀 공상과학소설이나 읽고 빈둥댔다는 게 가족들의 얘기라고 경찰은 전했다. 정씨는 사람 만나는 일을 극도로 꺼렸다고 한다. 때문에 온종일 방에서 ‘은둔’하는 날도 적지 않았다. 그러다가 깊은 밤 전철 2호선을 타고 동작구·구로구·영등포구 등을 다니며 주로 새벽 시간에 문이 열린 집으로 들어갔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잠을 자고 있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의 중간 수사결과를 보면, 정씨의 범행 동기에는 사회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저변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수사 경찰관은 “정씨는 이런 부정적 감정을 교도소에서 갖게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전과 5범인 정씨는 3차례에 걸쳐 5년 4개월 동안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실제 정씨는 경찰에 한 진술에서 “수감생활의 고통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컸고, 모두 나를 싫어해서 많이 맞았다”고 말했다.

범행 동기에 대해 정씨는 “부자와 사회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고 말한 것으로 경찰은 밝혔다. 하지만 그에게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친 이들 가운데는 부자라고 볼 만한 사람은 없었다. 하나같이 서민들이고 여성이며 청소년들이었다. ‘사회적 약자’들만 골라 범행을 저질렀으면서도, 그는 줄곧 부자나 사회가 싫어서였다고 말했다. 그의 범행 동기를 설명한 영등포경찰서 관계자는 “범행동기는 정씨만이 알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정씨는 “나는 가난해서 늘 손해만 본다”는 진술도 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자신이 일종의 가난에 따른 피해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목숨을 잃은 피해자들도 결코 부유한 이들이 아니었다. 대부분 힘없는 여성이나 청소년, 노인들이었다.


정씨가 범행을 통해 빼앗은 금품은 얼마나 될까? 경찰 발표를 보면, 놀랍게도 지난 2년여 동안 5명을 살해하고 10명을 다치게 하면서 훔치거나 빼앗은 돈은 2차례에 걸쳐 8만4천원에 불과했다. 나머지 8번의 범행에서 정씨는 단 한푼도 빼앗지 않았다. 큰 돈을 훔치거나 빼앗지도 않았으면서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을 해쳤냐는 질문에 정씨는 “완전범죄를 위해서”라고 짧게 답했다. 지난 22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히는 순간에도 정씨는 “그때 그 놈을 죽였어야 하는데”라고 혼잣말을 했다고 한다. 정씨는 자신의 범행 기사가 실린 신문을 모아놓기까지 했다고 한다.

수사 관계자는 “그는 무슨 이유가 있어서 살인을 했다기보다 살인 그 자체를 위해서 살인을 저지른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생계형’ 범죄가 아닌 ‘마니아형’ 범죄라는 얘기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기자들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거나 얼굴을 감추려고 하지 않는다. 실제 정씨의 얼굴은 험악한 ‘범죄형’이 아니고, 매우 평범하다.

조중근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정씨와 피해자들 사이에 돈이든 원한이든 직접적 연결 고리가 없다는 것이 가장 충격적”이라며 “정씨도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로 보이는데, 특히 대인관계에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는 자기애적 인격장애를 가진 것으로 진단된다”고 말했다. 성장기와 청소년기에 ‘사랑의 결핍’을 겪어, 지극히 이기적이고 타인과 전혀 공감을 이룰 수 없는 심리 상태가 범죄로 정씨를 이끈 주된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조 전문의가 진단한 정씨의 심리 상태는 이런 것이다. “그는 ‘살인’을 저지르고 잡히지 않는 것에 성취감을 느꼈던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이 그의 유일한 삶의 가치였는지도 모르겠다. 사실상 그는 ‘살인의 추억’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한겨레> 24시팀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일문일답> 정철수 서울 영등포경찰서장

-부자나 사회에 불만을 품었다고 정씨가 범행동기를 말했다고 하지만, 실제 피해자는 서민들인데?

=범행동기는 정씨만이 안다는 것이 어쩌면 답일 수 있다.

-추가로 밝혀진 2건의 경우, 각각 조사완료와 조사 예정이라고 발표했는데?

=조사완료는 범행 자백했고, 자백을 토대로 정씨를 데리고 현장으로 가 진술내용을 검증에 버금갈 정도로 확인한 상태를 말한다. 조사 예정은 피해자가 경찰서에서 정씨의 얼굴을 보고 범인으로 지목했으나, 아직 현장 확인을 거치지 않은 상태다.

-피해자가 범인으로 지목한 사건에 대해서 정씨는?

=범행 사실 인정했다.

-경기경찰청에도 유사 사건 있다는데?

=그런 걸로 알고 있다. 몇 건으로 특정되지는 않은 상태다. 유사한 수법의 사건을 분석해 수사에 반영할 생각이다.

-정씨는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 있나?

=받은 적 없다. 의학상 대인기피로 진단된 것은 아니다. 평소 가족들과도 대화가 없었다는 점, 굉장히 내성적이었다는 점 등을 종합해 대인기피증상이 있는 걸로 본다.

-피해자 가운데 여성이 많은데, 특별히 여성에 대한 원한관계 있나?

=그런 건 없다. 가정환경과 성장과정에서 생긴, 사회에 대한 부적응과 불만이 범행으로 표출된 것으로 본다.

-현장검증은 언제?

=현장검증은 주말께 마지막 단계로 할 예정이다. 필요하다면 검찰로 송치된 후에도 계속 수사할 수 있다.

-정씨 관련 수사팀 운영하는 경찰서는?

=동작, 구로, 금천, 관악, 영등포 5개 경찰서에서 공조수사하고 있다.

-정씨가 CCTV(폐쇄회로 티브이)에 찍힌 적은?

=현재까지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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