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히 쉬세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가 10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안장식에서 관 위에 너럭바위를 덮기 전 흙 한줌을 뿌리고 있다. 김해/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 시민들의 마지막 작별인사
10일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골 안장식에는 각계 대표나 사회원로인사들 외에 시민대표 14명도 초청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힘 없고, 돈 없고, 권력도 없지만 생전에 고인과 평범하지 않은 인연’을 맺었다. 고인에게 도움을 받은 이도 있고, 도움을 준 이도 있다. 이들은 안장식장에서 고인과 맺었던 지난 날을 떠올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들 가운데 특히 ‘네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씨, ‘변호사 노무현’이 변론한 ‘부림사건’ 관련자 윤연희씨, 그리고 ‘오리농법 전수자’ 주형로씨를 만나 ‘인연과 심경’을 들어 보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정토원 49재
[%%TAGSTORY1%%]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유해 안장식
[%%TAGSTORY2%%]
‘잘가오, 그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문화제
[%%TAGSTORY3%%]
피아니스트 이희아씨
잊지못할 따뜻한 손길과 미소 4년전 그 곡 다시 들려줄게요
“지금도 그렇게 손을 잡아주시고 있는 것 같아요.”
‘네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24·사진)씨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안장식에 분향할 시민대표 14명 중 한명으로 초청받은 그는 10일 안장식장에서 노 전 대통령의 유골함 위에 꽃을 얹고 향을 피우다 서럽게 울었다. 이씨는 이날 식이 열리기 3시간 전 일찌감치 식장에 도착했다. 안장식 참석에 앞서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에 서 있었던 부엉이바위 등을 살피기 위해서다.
봉하마을 도착하자마자 내내 부엉이바위를 한없이 응시하던 그는 4년전인 2005년 12월24일 ‘그날’을 떠올렸다. 이씨는 당시 청와대에서 열린 <희망콘서트>에 참석해 피아노를 연주했다. “그날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연주했어요. 노 전 대통령이 ‘요새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이 있는데 오늘 (희아씨 연주) 보니 불가능이란 없다는 생각이 드네’라며, 옆집 아저씨처럼 인자하게 말씀하셨어요. 그런 분이 결국 저 나즈막한 부엉이바위에서 돌아가시다니 지금도 믿기지 않습니다.”
특히 이씨는 그날 다함께 노래 <사랑으로>를 합창할 때 노 전 대통령이 손을 꼭 잡아주던 일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공연이 끝난 뒤, 이씨가 ‘제 연주 어떻게 들으셨나요’라고 물었을 때 ‘아름답다’고 답한 노 전 대통령의 미소는 지금도 그의 뇌리에 또렷하다.
이씨는 오는 12일 경기도 고양시 장항근린공원에서 열리는 노 전 대통령 추모공연 ‘천 개의 바람이 되어’에서 4년 전 노 전 대통령을 위해 연주했던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다시 한 번 연주한다.
김해/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오리농법 선생님
주형로씨 논에 발담그며 꿈꾼 생태마을 언젠가는 이뤄질 거라 믿어요
“봉하마을을 세계적인 친환경 생태마을로 만드시겠다더니….”
충남 홍성에서 달려온 주형로(51·사진)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농사꾼 스승’이다. 퇴임 뒤 고향인 봉하마을로 내려와 친환경 쌀을 생산하는 데 힘을 쏟았던 노 전 대통령에게 오리농법을 전수한 이가 바로 그다.
그가 노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4월이다. 노 전 대통령이 1977년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벼농사에 유기농법을 도입한 주씨에게 비서진을 보내 오리농법 강연을 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에 주씨는 당시 봉하마을회관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2시간 동안 수업을 한 뒤 논에서 직접 실습을 하기도 했다. “잠깐 인사만 하시고 가실 줄 알았는데, 끝까지 강연을 경청하시고, 논에도 들어가시는 것을 보고 진짜 농민을 생각한다는 진정성을 느꼈습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처음엔 우렁이농법으로 하려 했으나 내가 생태계 파괴 우려가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선 오리농법으로 결정한 것으로 안다”며 오리농법에 얽힌 얘기도 꺼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주민들을 직접 설득해 마침내 지난해 가을 처음으로 오리농법으로 친환경 쌀을 수확하도록 했다. 이 쌀은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포장지에 넣어 ‘봉하 오리쌀’이란 이름을 달고 전국으로 팔려나갔다.
서거 한 달 전인 지난 4월에도 주씨는 노 전 대통령을 만났다. 주씨는 “당시 논에서 실습을 한 뒤 점심을 먹으면서 술잔을 건네시던 그분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봉하마을을 세계적 생태마을로 만드시려던 그분의 꿈이 언젠가는 이뤄질 것으로 믿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해/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부림사건 관련자 윤연희씨
우릴 위해 무료 변론해주신 분…우린 지켜주지 못해 죄송해요
“저를 보고싶다 하시기에 학교도 하루 쉬고 이렇게 달려왔는데. 변호사님! 하늘 위에서는 편안하신가요?”
시민대표로 노 전 대통령의 유골 안장식에 초청받은 윤연희(49·부산 ㅇ중학교 교사·사진)씨는 10일 흐르는 눈물 때문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윤씨는 ‘잘나가는 세무변호사’ 노무현을 ‘인권변호사’의 길로 접어들게 한 이른바 ‘부림사건’ 관련자이다. 1981년 대학을 졸업하고 첫 발령받은 부산의 한 중학교에서 음악교사로 있던 그는 대학생 시절 친구들과 사회과학서적을 읽고 토론했다는 이유로 공안당국에 붙잡혀 갔다. 어찌할바를 모르던 윤씨는 노무현 변호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염려하지 마세요.” 너무도 쉽게 대답하는 노 변호사의 말에, 윤씨는 “너무 순진해서 뭘 모르는 것 아닌가? 나중에 딴소리하면 어쩌지?”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젊은 변호사’는 돈 한푼 받지 않고 변론을 해줬고, 힘들어하는 윤씨를 집에 데려가 밥까지 먹이며 격려해줬다. 결국 윤씨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1988년에는 복직도 했다.
‘대통령 노무현’의 초대를 받아 청와대에 갔을 때, 말한마디 못하고 눈물만 흘리는 윤씨에게 노 전 대통령은 “아직 시집 못갔어요?”라고 농담을 하며 달래줬다. 하지만 당시 윤씨는 부산으로 돌아오며 내내 울었다. ‘나의 변호사’가 너무 자랑스러웠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제 우리가 변호사님을 변호해드려야 할 차례인데…. 정작 그리운 사람은 가고 없으니…. 억울해서 어쩌죠? 분하고 원통해서 어떻게 하죠?” 윤씨는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며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김해/최상원 기자 csw@hani.co.kr
[%%TAGSTORY1%%]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유해 안장식
[%%TAGSTORY2%%]
‘잘가오, 그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문화제
[%%TAGSTORY3%%]
피아니스트 이희아씨
잊지못할 따뜻한 손길과 미소 4년전 그 곡 다시 들려줄게요
이희아씨
오리농법 선생님
주형로씨 논에 발담그며 꿈꾼 생태마을 언젠가는 이뤄질 거라 믿어요
주형로씨
부림사건 관련자 윤연희씨
우릴 위해 무료 변론해주신 분…우린 지켜주지 못해 죄송해요
윤연희씨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