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으로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7일 낮 서울 서초동 대법원 법원 전시관 안에 법관의 양심과 독립 등을 명시한 헌법 제103조가 적혀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주요 재판 동향을 청와대에 보고하고 ‘판사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의혹을 밝히기 위한 사법부의 3차 조사가 관련 법관들에 대한 고발 등 형사 조처를 하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앞선 두 차례 ‘셀프 조사’ 결과를 두고 비판이 많았던 탓에 세 번째 자체 조사 결과와 후속 조처에 관심이 쏠렸지만, 결국 사법부 자체 조사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25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에서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 마지막 회의를 열어 사법행정권 남용이 드러난 법관들에 대한 처벌 가능성을 검토한 결과, “직권남용죄 해당 여부는 논란이 있고, 그 밖의 사항은 죄가 성립하기 어렵거나 뚜렷한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같이 결정했다. 이날 250여쪽에 달하는 조사보고서에서 대법원이 주요 사건 판결 전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교감하거나 정부 입장을 고려한 판결을 해왔다는 등 사법부 독립과 재판 공정성을 심각하게 해치는 내용을 확인하고도 내린 조처다.
지난 2월 김 대법원장 지시로 꾸려진 특조단은, 1·2차 조사에서 열어보지 않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컴퓨터 등에서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한 파일 406개를 추가로 발견한 뒤 관련자 조사를 진행해왔다. 그간 비밀번호가 걸려 있어 보지 못했던 수백건의 파일을 당사자 동의를 얻어 열어봤는데, 이 과정에서 원 전 원장 관련 문건보다 심각한 내용이 무더기로 확인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법원 내부에서는 의혹에 관련된 전·현직 법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많다. 형사사건에 밝은 법관들 사이에선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공무상 비밀누설, 증거인멸 혐의 적용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번 의혹은 지난해 시민단체 고발이 이뤄져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부에 배당된 상태다.
그러나 특조단은 조사보고서에서 “이번 조사는 과거 잘못에 대한 청산의 의미를 가지는 한편 치유와 통합을 통해 사법부의 미래를 함께 개척하자는 의미도 가진다. 이를 위해 대법원 공직윤리위원회, 전국법관대표회의 등 다양한 의견들 들은 후 적절한 조치로 나아갈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앞서 김 대법원장은 2차 조사 발표 직후인 지난 1월24일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큰 상처를 준 것에 대해 대법원장으로 마음 깊이 사과한다. 합당한 후속 조처를 하기 위해 조사 결과를 보완하고 공정한 관점에서 조처 방향을 논의해 제시할 수 있는 기구를 조속히 구성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법원 안팎에서는 외부 인사가 조사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김 대법원장은 판사들로만 3차 특별조사단을 꾸렸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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