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으로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7일 낮 서울 서초동 대법원 법원 전시관 안에 법관의 양심과 독립 등을 명시한 헌법 제103조가 적혀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25일 양승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가 대법원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동의를 얻기 위해 ‘전교조 법외노조’ 집행정지 사건을 맞바꾸려 했다는 문건을 공개했다.
문건을 보면, 상고법원 입법을 추진했던 대법원은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심판 사건’과 함께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을 중요 현안으로 꼽아 청와대와 ‘윈윈’하는 방향을 검토하며 선고 시점까지 치밀하게 고려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조단이 이날 공개한 문건은 2014년 12월3일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기조실장 지시로 심의관이 작성했다. 이 문건에는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민중기)가 2014년 9월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 효력 정지 신청을 인용하자, 행정처가 청와대의 입장을 분석해 “크게 불만을 표시. 비정상적 행태로 규정. 사법 관련 최대 현안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만일 재항고가 기각될 경우 대법원의 각종 중점 추진 사업에 대한 견제·방해가 예상됨”이라고 적은 대목이 나온다. 이어 행정처는 “대법원의 최대 현안은 상고법원 입법 추진 → 이에 대한 BH(청와대)를 비롯한 각계 협조·지원이 절실”하다며 “(고용노동부의) 재항고 인용 결정은 양측에 윈윈의 결과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문건은 마지막에 ‘협조요청 사항’으로 “BH(청와대)가 대법원을 국정운영의 동반자·파트너로 높이 평가하게 될 경우 긍정적인 반대급부로 요청할만한 사안”이라며 △상고법원 입법 추진 협조 △대법관 임명 제청 협조 △재외공관 법관 파견 협조 등을 나열했다. 재판으로 양 대법원장의 ‘현안’을 맞바꾸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보고서에는 또 임종헌 전 차장이 청와대와 구체적인 거래를 시도한 또 다른 정황도 등장한다. 문건에는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이라는 제목으로 “그동안 사법부가 VIP(대통령)와 BH(청와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권한과 재량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해 온 사례를 상세히 설명”한다고 돼 있다. 그러면서 그 사례로 ‘① 합리적 범위 내에서의 과거사 정립 (국가배상 제한 등), ②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사회적 안정을 고려한 판결(이석기, 원세훈, 김기종 사건 등), ③ 국가경제발전을 최우선으로 염두에 둔 판결(통상임금, 국공립대학 기성회비 반환, 키코 사건 등) ④ 노동개혁에 기여할 수 있는 판결(KTX 승무원, 정리해고, 철도노조 파업 사건 등) ⑤ 교육 개혁에 초석이 될 수 있는 판결(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VIP와 BH에 힘을 보태 왔다”고 강조했다. 법원행정처는 특히 “국가적·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서 BH와 사전 교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물밑에서 예측불허의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썼다. 사실상 대법원이 하급심 판결에 관여했다는 것이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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