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가 1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검찰이 40여개 범죄 혐의를 들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재판에 넘기면서, 대법원이 이 사건에 연루된 법관들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은 이달 중 혐의의 경중을 가려 몇몇 전·현직 고위법관을 차례로 기소할 예정이지만, 상당수 판사들은 대법원의 징계를 통해 책임을 묻는 수순을 밟게 될 전망이다.
대법원은 검찰의 기소와 비위 통보 등을 좀 더 지켜본 뒤 징계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법원 안팎에선 지금껏 대법원의 태도로 봤을 때 적극적인 징계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회의 법관 탄핵 논의마저 실종된 탓에 사법농단의 손발이 됐던 판사들 상당수가 면죄부를 받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앞서 대법원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기소된 이후인 지난해 말 정직(3명), 감봉(4명), 견책(1명)이라는 징계를 내려 ‘솜방망이’ 처분이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 뒤 지금껏 추가로 징계를 받은 판사도 없다.
11일 추가 기소된 임종헌 전 차장 공소장에는 추가 기소 내용을 제외하고도 100명이 넘는 판사의 이름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이날 “추가 공소장에 적시된 내용과 향후 공소장에 적시될 내용을 분석해 조사와 징계의 필요성을 검토할 계획”이라는 원론적인 반응만 보였다.
징계가 늦어지면서 사법농단에 직접 연루된 판사들은 ‘무탈하게’ 재판 업무를 맡아 일하고 있다. 감봉 5개월 처분을 받은 박상언 창원지법 부장판사와 정다주 울산지법 부장판사, 감봉 4개월을 받은 김민수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는 지난달 1일부로 재판에 복귀했다. 일부 판사는 지난 1일 정기 인사 발령을 받았다. 정 부장판사는 의정부지법으로, 문성호 서울남부지법 판사는 서울중앙지법으로, 나상훈 대구지법 포항지원 부장판사는 수원지법으로 자리를 옮긴다.
법관 징계 시효는 사유가 있는 날로부터 3년이다. 2011~2017년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일어난 재판 개입 등 많은 혐의의 징계 시효가 끝났거나 곧 끝나게 된다.
이런 상황 때문에 대법원이 징계 의지 없어 시간만 끌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 판사는 “시간이 지나면 잊힐 거라고 생각하는 법원 내부 의견이 있기 때문에 대법원이 나서서 연루자들을 징계하거나 재판에서 배제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법농단 의혹을 처음 제기한 이탄희 판사는 지난달 말 법원 내부망에 “조직원으로 전락한 판사를 세상은 존경해주지 않는다. 미래의 모든 판사가 독립기관으로서의 실질을 찾아가길 기원한다”는 글을 남기고 사표를 냈다. 한 판사는 “부끄러움을 알거나 현 상황이 견디기 힘든 판사부터 법원을 떠날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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