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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기업은 안전하다더니”…두 달만에 아웃렛 푸드코트서 쫓겨났다

등록 2019-03-29 05:00수정 2019-03-29 07:30

자영업 약탈자들
“무조건 재계약된다…걱정 마라”
권리금 관련해선 비밀 유지 주문
계약서엔 ‘이의 제기 않는다’ 조항

상가임대차보호법 사각지대 ‘특수상권’
위탁업체 거치는 ‘재임대’ 많아
“아웃렛·가맹본사 위험성 묵인
권리금 나한테 줬냐며 책임 회피”
28일 ㅎ아웃렛 ○○점 푸드코트 모습. 지난해 2월 점포 9곳이 쫓겨났고, 리모델링을 거쳐 새로운 점포들이 들어섰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8일 ㅎ아웃렛 ○○점 푸드코트 모습. 지난해 2월 점포 9곳이 쫓겨났고, 리모델링을 거쳐 새로운 점포들이 들어섰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대기업 아웃렛이라 안전할 거라는 창업컨설턴트 말을 믿었는데 개업 2개월 만에 투자금 6천여만원을 전부 날리고 쫓겨났어요.”

정아무개(36)씨는 2017년 12월 ㅎ아웃렛 ○○점 푸드코트에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냈다가 개업 20여일 만에 퇴거 통보를 받았다. 그동안 모은 돈에 대출까지 받아서 투자했는데, 한푼도 건지지 못했다. 인테리어 철거 비용을 물어내라는 요구까지 받았다.

정씨에게 이 가게를 소개한 건 창업컨설팅 업체 ㅈ사였다. ㅈ사는 전직 대표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바지사장이었다고 폭로했던 회사의 후신이다. 정씨는 회사에 다니며 가게를 운영할 수 있는 ‘풀오토’(점주가 가게에 나가지 않고도 돌아가는) 편의점이나 카페를 원했다. 하지만 컨설턴트는 소자본 창업으로는 ‘특수점포’가 안정적이라며 이 가게를 권했다. 컨설턴트는 아웃렛 내부에 있어 안정적인 매출이 보장되는 매장이라고 했다. 직원 3명이 겨우 들어가는 5평 남짓한 매장의 권리금은 무려 5900만원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임대차 계약 기한이 2018년 3월 초까지로 석달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컨설턴트 김아무개 팀장은 “무조건 재계약된다. 대기업에서 갑자기 쫓아낼 아무런 이유가 없다. 장사하다가 힘들면 우리가 언제든 팔아주겠다. 권리금은 무조건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프랜차이즈 가맹 계약을 할 때도 김 팀장이 함께했다. 김 팀장은 “점포 임대차 갱신이 안 될 수도 있다고 프랜차이즈 업체가 으레 말하니 알고 있다고 답하라”며 “권리금에 대해서는 프랜차이즈 업체나 푸드코트 위탁운영 업체인 ㅇ푸드, ㅎ아웃렛 등에 모두 비밀로 해야 한다. 돈 문제는 민감하기 때문에 말하면 안 된다”고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순진한 정씨는 그대로 따랐다. 정씨가 철저히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퇴거 통보를 받고 나서였다. 리모델링해야 하니 나가달라는 말에 정씨가 대응할 수단은 없었다. 정씨가 장사 시작 두달 만에 쫓겨난 이유는 ‘특수점포’의 위험성을 몰랐기 때문이다. 정씨 가게처럼 대형 쇼핑몰이나 백화점의 푸드코트, 대학 캠퍼스, 병원 등 특수상권 내 매장을 부동산 업계에서는 ‘특수점포’라고 부른다. 매달 일정한 임차료를 내는 일반 매장과 달리 매출에 따라 일정 비율을 낸다. 정씨는 매출액의 22%를 임차료로 냈다.

특수상권의 건물주는 개인이 아닌 위탁운영 업체나 프랜차이즈 등 법인과 임대차 계약을 한다. 가맹점주가 임대차 계약서를 썼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재임대에 해당하는 전대차 계약인 경우가 많다. 컨설팅 업체가 정씨에게 프랜차이즈 업체 소속 점장인 것처럼 행동하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정씨의 경우 푸드코트 위탁운영 업체인 ㅇ푸드가 ㅎ아웃렛과 맺은 푸드코트 위탁 계약(5년)의 만료 시한이 지난해 3월 초였고, 이에 따라 ㅇ푸드와 프랜차이즈 본사가 맺은 임대차 계약도 종료됐다. 계약이 자동 연장될 거라는 창업컨설턴트의 고의적인 거짓말과, 임대차 계약 종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뻔히 알고 있던 프랜차이즈 본사, ㅇ푸드, ㅎ아웃렛의 묵인 아래 정씨는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돈을 잃었다. 정씨는 “이제 막 인수했는데 나가라고 하니 청천벽력이었다. 창업컨설팅 업체도, 위탁업체도, 아웃렛도 모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나 몰라라 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정씨와 함께 쫓겨난 점포는 무려 9곳이었다. 이 가운데 창업컨설팅 업체를 통해 입점한 점포는 7곳이다. 짧게는 2개월에서 길게는 1년여 만에 내쫓겼다. 권리금은 천차만별이었다. 5평 남짓한 공간에 3500만원에서 많게는 1억2200만원까지 권리금을 내고 들어왔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권리금 회수를 보장하고 있지만, 정씨처럼 편법 임대차 계약을 맺은 상인들은 보호받지 못한다. 창업컨설팅 업체도 내부적으로는 ‘특수점포’ 계약 시 반드시 주의하라고 교육한다. 소자본 창업자들을 유인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는 하지만, 권리금 한푼 챙기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져서다.

정씨는 창업컨설팅 업체인 ㅈ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계약서에는 ‘본 계약은 양수인의 의사결정에 의해 계약을 체결하므로 추후 매출 및 점포운영에 관한 모든 사항에 대해 창업컨설팅 회사에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계약 당시에는 설명조차 듣지 못한 문구다. ㅈ사는 이를 근거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배선경 변호사(법률사무소 여름)는 “특수상권 가맹점주는 자신의 이름으로 사업자를 내고 정식으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며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특수상권 특성상 절대 권리금을 주고 들어가서는 안 되는데 창업컨설팅 업체가 이를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ㅎ아웃렛에서 쫓겨난 한 점주는 “ㅎ아웃렛 직원은 권리금을 얼마 주고 들어왔냐고 물어볼 만큼 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며 “ㅇ푸드 역시 다 알면서 권리금을 나한테 준 것 없지 않으냐고 책임을 회피했다”고 하소연했다. ㅇ푸드 한 관계자도 “권리금 계약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도 알고 ㅎ아웃렛도 모두 알고 있었다”며 “특히 임대차 계약 종료 시점 막바지에는 지금은 거래하지 말라고 프랜차이즈 업체에도, 점주들에게도 모두 이야기했는데도 창업컨설팅 업체를 통해 거래가 이뤄졌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ㅎ아웃렛은 “ㅇ푸드가 계약한 것으로 알고 있다. 위탁 운영하는 곳이라 내부 사정은 잘 모른다”고 답했다. ㅇ푸드 쪽은 “우리는 아웃렛과 5년 계약이 되어 있었고, 우리와 임대차 계약을 하는 쪽에는 이 사실을 고지했다. 법인과 계약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법인에서 운영하기 힘들다고 잘하는 개인한테 넘기겠다고 하면 안 받을 수가 없다. 권리금 거래에 우리는 일절 관여한 적 없다”고 밝혔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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