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로 퀵서비스 '콜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퀵서비스 노동자들이 27일 오후 서울 중구 장교빌딩 앞에서 콜을 기다리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답답한 마음이죠. 이제 와서 다른 일을 찾기도 어렵고, 코로나19가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더라도 일감이 바로 생기는 건 아닐 거고….”
퀵서비스 기사로 일한 지 20년, 경기 불황의 파고를 숱하게 겪었다는 40대 ㄱ씨에게도 코로나19가 안겨준 충격은 초유의 일이었다. 그는 28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지난달 매출이 반토막이 났다. 지금까지 이렇게 어려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한달에 25만원가량 하는 기름값과 엔진오일 교체비용(3만원) 등 기본 운용비를 빼면 한달 수입이 100만원 밑으로 뚝 떨어졌다. 이와 별도로 물량을 받기 위해 필요한 퀵서비스 앱(1만6500원씩)도 네다섯개는 써야 해서, 매출이 떨어져도 들어가는 비용은 그대로다. ㄱ씨는 “퀵서비스 회사에 물어보면 물량이 30% 정도 줄었다고 하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이전에는 한번 (운송을) 가면 물량을 많게는 5개 정도 따서 갔는데 지금은 1~2개만 들고 가는 것이어서 비용까지 따지면 수입은 절반 이상 줄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임금노동자와 비슷하게 일하지만 사업계약을 맺고 상품이나 서비스 제공에 대한 수수료를 받는 ㄱ씨와 같은 이들은 특수고용직 노동자(특수형태근로 종사자)로 불린다.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존재한다. 2018년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연구원의 공동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221만명으로, 전체 취업자(2709만명)의 8.2%에 이른다.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을 고스란히 입고 있지만 특수고용직의 어려움은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노조가 결성돼 있지 않은 곳들도 많고 정부도 실태 파악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탓이다.
ㄱ씨는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배달 물량이 오히려 늘지 않았냐고 하더라”며 “주로 맡아온 업무가 금융회사 간 서류 전달이나 여행사에서 주문이 들어오는 여권 배달, 면세점 서류 배달 등이 많아서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이 큰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실을 잘 모르는 것은 정부도 마찬가지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30일 특수고용직·프리랜서 등에게도 지급되는 생활안정지원금 지원 대상의 예를 들면서, 지방자치단체들에 ‘택배 기사, 퀵 기사는 업황을 고려해 가급적 제외’라는 문구를 포함했다가 당사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철회했다. “가까스로 지원 대상엔 포함됐지만 하루 수입을 포기하고 서류를 떼러 다니는 퀵 기사는 거의 보지 못했다”고 그는 전했다.
코로나19 여파로 퀵서비스 ‘콜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퀵서비스 노동자들이 27일 오후 서울 중구 장교빌딩 앞에서 콜을 기다리고 있지만 단말기 화면이 비어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원래도 수입이 넉넉한 편은 아니고 들쭉날쭉한 편이었지만 이번엔 당장 생계비 고민이 커졌다. 경기도 성남시에 셋방을 얻어 혼자 사는 ㄱ씨는 월세 20만원과 통신요금 5만원, 오토바이 보험료 할부금 5만원, 각종 공공요금을 내고 나면 제대로 된 밥을 사 먹기 곤란할 때가 많다. 하는 수 없이 ㄱ씨는 1년 단위로 내는 오토바이 수리비용 지출부터 끊었다. 그는 “오토바이는 사고를 한번만 내더라도 보험료가 많이 올라가기 때문에 매달 수입에서 수리비용을 위해 돈을 모아놓고 있었다. 지난달부터는 그럴 여유가 없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ㄱ씨가 경험했던 최대 호황은 2002년 월드컵 때였다. 그는 “당시는 지금처럼 퀵서비스 회사에 한 건당 26%씩 수수료도 물지 않았고 월 40만원 고정금만 내면 됐다”고 돌이켰다. 지난 20년을 그는 “퀵 기사 잔혹사”라고 정의했다. 퀵서비스 회사 규모가 커지고 기사들이 ‘공유’되기 시작하면서 단가가 뚝 떨어졌고, 이어 ‘인성’이니 ‘로지’니 하는 퀵서비스 앱이 활성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다시 한번 떨어졌다. 30㎞쯤 운송을 하면 3만5천원 남짓 받던 것이 2만5천원 정도로 낮아진 게 벌써 4년 전의 일이다. 그는 “퀵서비스 회사들은 퀵 기사들을 손쉽게 뽑아 높은 수수료를 챙기니 수익이 그대로이거나 사업이 더 커지는데 퀵 기사들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영일 서비스연맹 퀵서비스노조 위원장은 “서류 배달 일이 대체로 많은 퀵 기사들은 경기가 나빠지면 바로 일감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늘린 상황이고 수출입도 줄어들면서 서류 자체가 왔다 갔다 하지 않는 것”이라며 “이달 들어선 체감으로 수입이 종전보다 70%까지 떨어졌다는 이들이 적지 않더라”고 말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 가운데는 일할 여력이 있지만 정규 노동시장에 편입되지 못한 고령층도 적지 않다. 2016년 서울시 조사 결과를 보면, 셔틀버스 기사들의 평균 연령은 60.8살이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60대 초반의 ㄴ씨도 그런 경우다. 금융회사를 다니던 ㄴ씨는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 과정에서 회사를 나온 뒤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다가 5년 전부터 셔틀버스 기사로 일하고 있다. 평탄치 않았던 그의 일자리 이력이 다시 흔들리게 된 것은 코로나19 때문이었다.
ㄴ씨는 원래 오전엔 사립초등학교와 어린이집에서, 오후에는 학원에서 셔틀버스를 운행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긴급보육을 이어가는 어린이집 때문에 아침에만 잠시 셔틀버스를 운행할 뿐 다른 운행은 모두 끊어져 버렸다. 초등학교의 등교 개학은 계속 미뤄져 왔고 학원들 중 상당수는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하면서 ㄴ씨의 셔틀버스 운전대도 ‘멈춤’ 상태다. 한달 400만원 정도였던 수입은 100만원 안팎으로 추락했다. 벌써 10주째 겪고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뉴스를 보면 서울의 학원 중 80% 이상이 문을 열었다고 하는데, 하필 내가 운행하는 동네는 그에 속하지 않았다”며 “정부가 코로나19 전파를 방지하기 위해 학원 문을 닫으라고 한 것이어서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더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각종 할부금에 버스회사에 지입료를 내고 기름값, 차량 유지보수비까지 빼고 나면 막막한 상황”이라며 “우리처럼 나이 먹은 사람들은 다른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한때 ㄴ씨는 학교와 학원 쪽의 갑작스러운 운행중단 결정에 혹시 휴업수당이라도 요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변호사를 찾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변호사로부터 ‘평소 같으면 지시관계 등을 따져서 휴업수당을 요구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번 휴업은 사업주가 임의로 결정한 게 아니라 국가 시책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귀책사유를 사업주에게 묻기 어렵다. 소송에 가도 질 것’이라는 말만 듣고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이영철 민주노총 특수고용노동자대책회의 의장은 “특수고용직의 고용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정부는 한쪽으로는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면서 근로 형태가 다양화되는 것에 대응한다고 하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자신들이 정한 기준만 고집하면서 대책을 세우려 한다”며 “대책으로 혜택을 볼 사람들 기준으로 생각을 하지 못하니까 손으로 모래를 쥐듯 대부분의 특고 노동자들은 지원혜택을 못 보고 계속 새어 나간다. 코로나19 이전에도 꾸준히 제기해 왔는데, 특고가 얼마나 불안정한 신분인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