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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불법촬영도 덮기 바빴다, 그 뒤엔 ‘닫힌 군대문화’

등록 2021-06-02 20:33수정 2021-06-06 17:19

군 성폭력 왜 끊이지 않나
공군 부사관 극단선택 파문 이어
이번엔 “여군상대 불법촬영 적발”
‘은폐’ 낳는 폐쇄적 조직속에
피해자는 관심병사 낙인 찍혀
집단내 괴롭힘 당하는 패턴
선임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부사관 이아무개 중사가 안치된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 티셔츠와 과자 등이 놓여 있다. 김윤주 기자
선임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부사관 이아무개 중사가 안치된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 티셔츠와 과자 등이 놓여 있다. 김윤주 기자

공군 여성 부사관이 성추행 피해 신고 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벌어져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2일 공군의 다른 부대에서도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두 사건 모두 범행이 드러난 뒤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조처를 제대로 하지 않고, 사건을 덮으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성폭력 사건을 숨기는 데 급급한 폐쇄적인 군 조직 문화 등을 바꾸지 않으면 피해자들이 2차 피해에 계속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인권센터는 2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월 초 공군 제19전투비행단에서 여군을 상대로 불법촬영을 저지른 남군 간부가 현행범으로 적발됐다”고 밝혔다. 해당 부대의 군사경찰(예 헌병)이 확보한 ㄱ하사의 휴대용 저장장치(USB)와 휴대전화를 포렌식한 결과 다량의 불법 촬영물이 발견됐다. 특히 휴대용 저장장치에는 피해 여군들의 이름이 제목인 폴더에 촬영물이 담겨 있었다. 피해자는 최소 5명 이상인 것으로 파악된다. 촬영물 유포 여부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장기간 저장돼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해자는 오는 8월 전역이 결정된 군사경찰대 소속 하사이며 공식적인 징계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조처도 되지 않았다. 다수의 제보자가 “가해자에게도 인권이 있으니 봐달라”, “가해자를 교육하고 있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식의 말을 들었다고 군인권센터는 전했다.

이는 지난달 22일 공군 부사관 이아무개 중사가 자신의 성추행 피해를 신고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과 비슷한 양상이다. 이 중사의 유족은 “성추행 피해 신고 뒤 무마시도와 괴롭힘 등을 이기지 못해 이 중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한다. 두사건 모두 성폭력 사건 뒤 군 내부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조처 하지 않고, 사건을 무마하려 한 정황이 발견된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센터 교육장에서 여군 숙소에 무단 침입해 불법촬영을 저지른 간부에 대한 폭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센터 교육장에서 여군 숙소에 무단 침입해 불법촬영을 저지른 간부에 대한 폭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군대 내 여군 성폭력의 경우 △취약한 피해자 보호 △2차 가해 △지지부진한 사건 조사 △노골적 무마 시도 등 사건이 벌어진 뒤 양상이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김숙경 군인권센터 군성폭력상담소장은 “특히 여군 성폭력의 경우 남성 중심적인 권력관계는 계급 권력관계를 뛰어넘어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성폭력을 저지르기도 한다”며 폐쇄적인 군대 문화와 그 속에서 학습되는 무기력 등을 고질적인 문제로 꼽았다.

피해 신고 뒤 벌어지는 2차 가해도 유독 군에서는 심각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집단 내 소수라는 여군의 특성상 피해자가 특정되고 평소 행실이나 피해 사실에 대한 악의적 소문이 퍼지기 쉬운 탓이다. 전보 조처가 되더라도 옮겨간 부대에서 또다른 압박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 중사 유족은 그가 이동한 부대에서 ‘관심병사’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2018년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의 상고심을 맡았던 박인숙 변호사는 “피해자에 대한 군내 이력 등 오래된 정보를 상관인 가해자가 많이 알고 있으니 나쁜 소문을 내기도 쉽다”며 “향후 표창장이나 승진 등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군대 내 낮은 성인지 감수성도 영향을 끼친다. 김 소장은 “남성중심사회인 군에서는 남성의 성욕을 억누를 수 없고 성폭력은 피해자가 유발했다는 인식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도 “군에서는 그 정도의 피해를 왜 문제 삼느냐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성폭력 사건 처리가 군 내부에서만 이뤄지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 소장은 “군에서는 성폭력 등 사고가 일어나면 지휘관에게 보고하는 것이 절차”라며 “민간에서는 상급자에 대한 보고로 끝나지 않고 경찰에 가서 신고할 수도 있다. 반면 군은 입법과 사법, 행정 기능을 다 가진 유일한 집단이고 관련 사안은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외부에서도 개입하기 어려워 군사경찰조차 지휘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불시 방문 조사권을 가진 군인권 보호관 제도 등의 도입을 통해 민주적으로 군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김 소장의 조언이다.

한편 군인권센터는 이번 공군 불법촬영물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들이 군대 내 성폭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고 전했다. 군인권센터는 공군에 △가해자 즉각 구속과 수사 △소속부대 군사경찰대 관련자 조사 및 문책 △사건을 상급부대로 이첩해 처리 △피해자 보호조처 등을 요구했다. 이우연 장예지 기자 azar@hani.co.kr

▶바로가기: 공군 성폭력 또 폭로…“남성 간부, 여군 숙소 침입해 불법촬영”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97700.html?_fr=mt2

성추행 석 달 뭉개기…“군이 살 수 있는 사람 죽게 만들었다”

https://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9976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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