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7일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식화한 이후, 여가부를 둘러싼 각종 소문과 마타도어(흑색선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여성’만을 위한 부처로, 한국에만 이런 부처가 있고 성인지 관련 예산에만 35조원을 쓰고 있다는 등의 반복되는 ‘가짜뉴스’들이다. 여가부를 둘러싼 이러한 주장들을 팩트체크해봤다.
1. 여성가족부는 ‘여성’만을 위한 부처?
2022년 편성된 여가부 예산은 1조4650억원으로 정부 전체 예산의 0.24%에 불과하다. 액수로는 18개 정부 부처 가운데 가장 적다. ‘초미니 부처’이지만 여가부의 지원대상은 한부모 가족·위기 청소년·학교 밖 청소년·성폭력 피해자 등을 망라한다.
구체적인 예산 내역을 보면, 여가부 전체 예산의 61.9%(9063억원)가 가족 관련 정책에 쓰인다. 아동양육비 등 한부모 가족 지원에 가족 관련 예산의 절반가량(4213억원)을 쓰고, 아이돌봄 서비스 지원에도 2015억원이 들어간다. 여가부의 한부모가족 지원이나 아이돌봄 서비스 지원은 여성과 남성이 구분 없이 모두 혜택을 본다.
여가부 예산의 18.5%(2716억원)가량은 청소년 관련 사업에 배정됐다. 위기 청소년의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사업(589억원)이나 9∼24살 여성청소년의 생리용품을 지원하는 사업(126억원), 학교 밖 청소년을 지원하는 사업(251억원) 등이다.
성폭력·가정폭력·강력범죄 피해자 등을 지원하는 ‘권익’ 분야 예산이 9.2%(1352억원)를 차지한다. 이 또한 여성만 정책대상일 수 없다.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를 돕는 여가부 산하 기관인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도 ‘권익’ 분야 예산으로 운영되는데, 지난 2018년부터 2021년 6월까지 센터의 도움을 받은 피해자 9910명 가운데 2058명(20.8%)이 남성이다. 권익 관련 예산은 성폭력·가정폭력·스토킹 피해자에 대한 무료 법률지원(32억원)을 포함한다.
성별 불평등과 직결되는 ‘여성·성평등’ 예산은 비중이 7.2%(1055억원)다. 상당분이 경력단절 여성 지원(737억원)에 투입된다.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중위임금 기준 남성 임금과 여성 임금의 차이)는 2019년 기준 3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2. 여성가족부 성인지 관련 예산이 35조?
여성가족부가 여성을 위한 ‘성인지 예산’으로 35조를 쓴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성인지 예산’은 여가부에 별도로 배정된 예산이 아니다. 여가부가 낸 ‘2021 성인지 예산서 작성 매뉴얼’은 성인지 예산을 “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칠 영향을 미리 분석해 편성에 반영하고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수혜받았는지 평가해 다음 연도 예산에 반영하는 제도”라고 설명한다. “성인지 예산은 여성을 위한 예산이 아니라 성인지적 관점에서 분석 대상이 되는 국가의 주요 사업 예산을 의미”(지난해 7월 여가부 팩트체크 자료)한다는 것이다.
2021년 ‘성인지 예산’ 35조원 가운데 가장 많은 액수는 보건복지부가 집행하는 예산(11조4000억여원)이 차지하고, 중소벤처기업부·고용노동부·국토부 순으로 많았다. 여가부의 성인지 예산은 8800억여원에 그쳤다.
‘성인지 예산’이라는 이름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여가부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연 ‘성인지 예산제도 실효성 제고를 위한 운영 모형 개발’ 토론회에서는 ‘성인지 예산’이 별도로 편성된 예산이라는 오해를 줄이기 위해 ‘성인지 예산서’를 ‘성인지 예산 분석서’로 개념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3. 여성가족부는 한국에만 존재?
여성가족부와 같은 성평등 주무부처가 한국에만 있다는 주장, 주요 선진국에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정부 집계(2020년 5월 기준)에 따르면, 전세계 97개 국가에 ‘여성’ 또는 ‘(성)평등’ 관련 장관급 부처와 기구가 존재한다.
주요 선진국에도 대부분 ‘성평등’을 전담하는 주무부처나 기구가 존재한다. ‘여성과 평등부’(영국), ‘성평등·다양성·기회균등부’(프랑스), 성평등·주거부(스웨덴), 여성권한과 성평등부(일본) 등 이름만 조금씩 다를 뿐이다. 프랑스의 ‘성평등·다양성·기회균등부’ 등 주요 선진국의 성평등 전담 부처·부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역할도 한다.
4. ‘게임 셧다운제’도 여가부 주도로 도입?
여성가족부가 ‘강제적 게임 셧다운제’ 도입의 주역이었다는 주장도 오랜 ‘마타도어’다. 사실상의 오해가 20대 남성 다수가 여가부를 배척하게 된 주요 계기가 되었단 분석도 있어왔다.
‘셧다운제’의 내용이 담긴 법안(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은 지난 2005년 7월 김재경 의원(당시 한나라당)이 처음으로 발의했다. 회기만료로 폐기되는 등 수차례 부침을 겪은 ‘셧다운제’ 관련 법안은 2011년 4월 18대 국회에서 숱한 논란 끝에 본회의를 통과했다.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의원 77명과 야당인 민주당 의원 35명을 포함한 118명의 의원이 셧다운제를 골자로 하는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에 찬성했다. 당시 여가부는 셧다운제 적용 범위 등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제도 도입은 국회가 주도하는 상황이었다. 게임 셧다운제를 포함한 청소년 관련 업무 자체가 당시 보건복지가족부에 포함되어 있다가, 2010년이 되어서야 여성가족부로 이관된다.
‘강제적 게임 셧다운제’를 ‘게임시간 선택제’로 대체하는 법안도 지난해 11월 국회 주도로 통과됐다. 권인숙(더불어민주당), 허은아(국민의힘), 류호정(정의당) 의원 등 여야 구분 없이 게임 셧다운제의 문제점에 공감한 의원들이 개정법안을 제출한 결과였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