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소설가
2050 여성살이/
“엄마, 우리 담임 보면 쩔 거야.” “쩔어? 뭘?”
딸이 다니는 중학교에서 학부모 총회가 있어 학교에 찾아갔다. 담임 선생 얼굴이라도 봐 두어야 딸과의 일상회화에서 지지와 공감 버튼을 격하게 누를 수 있다는 치밀한 계산 때문이었다. 외계인의 언어를 구사하는 딸과 원활한 의사소통은 못하더라도 문맥의 흐름이라도 파악하자면 필수 과정이다.
딸의 교실에 들어가 창밖을 보았다. 읍이긴 하지만 아직은 다 사라지지 않은 들판이 눈에 들어왔다. 딸이 다녔던 초등학교의 창 밖 풍경은 온통 논밭이었다. 한 학년엔 한 반만 간신히 있어 딸은 교과서에 적힌 ‘새 학년, 새 학기, 새 친구’라는 구절을 ‘우리는 늘 같은 반, 같은 친구들’이라고 고쳐 놓기도 했다. 전교생이 60명 안팎이다 보니,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고 불러 주었다. 운동회라도 할라치면 동네 잔치가 되는 건 기본이고 끝 무렵엔 혹시 상을 하나라도 받지 못한 아이가 있을까봐 선생님들이 아이들 손을 일일이 살피고 다녔다. 무엇보다도 학습 준비물을 챙길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이 좋았다. 각종 수업 준비물은 말할 것도 없고 운동회 같은 행사가 있는 날에는 학교에서 단체복 등을 그냥 나눠주었다. 공사가 다망하신 아이들님께서 만사를 제쳐두고 날마다 학교에 다녀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읍하는 시골 학교에 무슨 촌지 문제 따위가 있으랴?
최근 즐겨 찾는 한 여성 포털사이트에서는 평생 처음 학부모란 타이틀을 달고 부푼 마음으로 간 학부모 총회에서 은근슬쩍, 애매모호한 방법으로 촌지를 요구하는 선생을 만난 분의 분노 어린 글이 큰 공감을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난 이런 선생도 겪었다’ 식의 글들이 봇물 터지듯 올라왔다. 한편에선 ‘내 자식은 소중하니깐!’ 또는 ‘대한민국에서 하루 이틀 살았니?’ 식의 논리를 들이대며 무슨무슨 회를 통해 조직의 쓴 맛을 여지없이 보여주시는 엄마들을 질타하는 글들도 이어졌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하지 않는가? 소중한 내 자식이 정말로 기회가 균등한 세상에서 살기를 바란다면, 꿈 같은 소리라 하더라도 꿈조차 못 꾸랴, 교사나 학교의 부당한 요구에는 저항을 해야 한다고 난 여전히 믿고 있다. 나도 선생님께 ‘인사’란 것을 할 때가 있다. 학년이 끝날 무렵 아이랑 둘이서 1년 동안 학교 생활과 선생님을 평가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후한 점수를 받는 선생님께 한 해 감사 편지와 함께 문화상품권을 드리는 게 나의 촌지법이다.
김연/소설가
김연/소설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