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에서 문어와 영화감독이 다정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한 영화감독과 문어 사이의 따뜻한 교감을 그린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보면 문어가 다리를 뻗쳐 사람의 손을 쓰다듬는 장면이 나온다. 오랜 교류를 통해 이 문어는 영화감독을 먹이나 돌멩이가 아닌 친구로 여기는 것이 분명하다.
문어는 다리에 달린 빨판으로 맛을 느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문어 다리의 빨판에는 화학물질을 감지하는 세포가 있어 만지는 대상이 먹이인지 적인지를 알아낸다. 다큐멘터리에 나온 문어는 친구의 냄새를 다리로 맡고 반가움을 표시했다.
레나 반 기센 미국 하버드대 박사과정생 등 이 대학 연구자들은 30일 과학저널 ‘셀’에 실린 논문에서 “문어 빨판의 감지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분자 차원에서 규명했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두뇌와 반쯤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문어 다리 여덟개에서 신경계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하는지 알게 됐다”고 밝혔다.
문어가 놀라운 인지능력을 발휘하는 능력은 8개의 발, 특히 발에 나 있는 빨판의 감지기에 숨어 있다. 레나 반 기센 제공
문어는 척추동물과 약 5억 년 전 진화 계통에서 갈라져 사람과 아주 거리가 먼 동물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사람과 비슷한 행동을 한다. 축구 경기 결과를 예측하는 일회성 행동이 아니라 문어는 기르는 수족관의 닫힌 문을 열고 탈출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생쥐 수준의 미로 학습 능력을 보인다. 또 자기에게 잘 대해 주는 사람과 학대하는 사람을 구분할 줄 안다. 자연계에서도 다른 동물을 흉내 내고 주변 환경에 맞춰 피부색과 무늬를 자유롭게 바꾼다.(▶
지극한 모성애와 지능…낙지가 고통을 모를까?)
이런 이유에서 문어가 외계에서 온 생물이란 주장이 문학적 상상력에서뿐 아니라 ‘문어를 제대로 이해해야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이해할 수 있다’며 우주생물학의 관심사가 되기도 했다.(▶
외계인 두뇌, 사람보단 문어랑 닮았다?)
접시를 만지는 문어. 다리의 빨판이 접시 표면의 화학물질을 감지해 어떤 물체인지 파악한다. 레나 반 기센 제공
문어가 작은 두뇌로 이처럼 뛰어난 인지능력을 보이는 비결은 분산 구조이다. 뇌의 지시 없이도 8개의 팔은 독자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조율해 움직인다. 이번 연구는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 핵심 지점인 다리의 빨판에 주목했다.
연구자들은 빨판 내부의 세포 표면에 새로운 종류의 감지기가 분포한다는 걸 발견했다. 이 감지기는 물에 녹지 않는 분자를 가려내도록 적응했다. ‘화학 촉각 수용기’라 불리는 이 감지기를 이용해 문어는 다리로 만지는 물체가 먹이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연구에 참여한 니컬러스 벨로노 교수는 “물에 녹지 않는 분자가 물체의 표면을 덮고 있기 때문에 문어는 팔을 대 게인지 돌멩이인지 알 수 있다”며 “말하자면 게를 만지면서 그 맛을 보기 때문”이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결국 문어는 다리로 본다. 빨판의 감지기가 화학물질의 미세한 차이를 감지해 달아날지 재빨리 공격할지 아니면 무심하게 지나칠지를 뇌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자율적으로 판단해 행동한다.
문어는 심장 3개, 앵무새 닮은 부리, 다리 여덟개에 분산된 9개의 두뇌로 무척추동물이면서도 같은 크기의 척추동물 못지않은 지적 능력을 보인다. 레나 반 기센 제공
연구자들은 다리로 보는 문어의 분산 신경계가 오징어와 갑오징어 등 다른 두족류에서도 나타날 것으로 추정했다(▶
개와 쥐 사이, 오징어는 왜 그렇게 영리할까). 문어 뉴런(신경 세포)의 3분의 2는 다리에 분포한다. 다리는 반자율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잘려도 뇌의 명령 없이 스스로 물체를 쥘 수 있다. 벨로노 교수는 “몸을 움츠려 게를 잡을 것인가 수색을 계속할 것인가, 문어는 다리로 만져가면서 재빨리 결정을 내린다”고 설명했다.
인용 논문:
Cell, DOI: 10.1016/j.cell.2020.09.00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