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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류시화의 기획력에 미소띤 ‘죽음 앞 강의’

등록 2006-08-03 19:05수정 2006-08-04 14:29

베스트셀러 들여다보기/인생수업

올해 내내 <마시멜로 이야기>가 장기집권하던 베스트셀러 순위에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지난 5월30일 출간된 뒤 상위권에 올라 2위까지 치고 올라간 <인생수업>(이레 펴냄, 9800원)이 몇몇 베스트 순위에서 1위에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책을 펴낼 당시 출판사 이레쪽은 어느 정도 팔릴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책의 성격상 폭넓은 인기를 누리기에는 다소 제약이 있을 수도 있다고 내다보고 있었다. 이 책의 내용이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을 직접 취재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생각하게 되는 ‘삶에서 배워야 할 것’ 그리고 ‘삶이 가르쳐주는 것’들을 강의 형식으로 묶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용이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요즘 득세하는 말랑말랑하고 부담없는 내용 위주의 베스트셀러들보다는 아무래도 진지한 책이란 점 때문에 그렇게 예상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가 말해주듯 오히려 독자들은 가벼운 책 못잖게 이 책에 관심을 보여주었고, 이제 1위를 넘보고 있을 정도다. <인생수업>은 출간 2개월만에 10만부 넘게 팔렸는데, 판매 추세가 시간이 지날수록 수그러들지 않고 탄력을 받고 있어 출판사쪽을 미소짓게 만들고 있다.

<인생수업>은 일단 지은이의 무게감이 두드러진다. 지은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정신의학자로, 특히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운동에 앞장선 이다. 공저자 베이비드 케슬러는 그 제자로 함께 작업에 동참했다. 죽음이란 것의 개념과 인식을 바꿨던 이 퀴블러 로스가 노년기 마비 증상에 시달리면서도 쓴 책이란 점에서 그 배경 이야기가 만만찮다.

그러나 한국 출판시장에서 이 책이 잘 팔리게 된 것은 역시 가장 확실한 성공률을 보여주는 기획자로 꼽히는 번역자 류시화씨의 이름 역할이 컸다. 실제 이 책은 지은이가 해당 분야에서는 저명하다고 하지만 국내 독자들에겐 생소한 이름이고, 책 자체도 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지는 않았다. 그런 책을 국내시장에서 통할 것으로 골라내고 번역한 류씨의 선구안에, 그리고 독자들에게 주는 류씨의 이름값이 더해져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워낙 많이 쏟아져 나오는 번역서들 사이에서 류씨의 이름이 출간 초기에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집어들게 만드는 데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결정적인 강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후 꾸준한 판매 강세를 보이는 것은 류시화란 번역자의 이름 이상으로 책의 꾸밈새를 결정한 류씨의 기획력이 작용했다. 날이 갈수록 책 표지 디자인이 중요해지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이 <인생수업>이다.


책 표지에는 한 소녀가 다소곳이 무릎을 굽히고 앉아 책을 읽고 있고, 그 앞에는 집채만한 코끼리가 역시 다소곳이 엎드려 집중하고 있는 모습의 삽화가 그려져 있다. 누구나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 이 그림은 원서에는 없었던 것을 이레 편집진이 집어넣은 것이다. 이 그림은 인간과 동물이 어우러지는 신비한 분위기의 사진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그레고리 콜버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사진과 거의 흡사한 분위기의 삽화를 그린 것이다. 책 표지에 콜버트 사진이 적합하다는 의견을 류씨가 냈고, 편집진은 콜버트의 사진풍으로 삽화를 시리즈식으로 그려달라고 주문 제작해 표지와 본문에 넣었다. 사진을 그대로 그림으로 베껴 그려넣은 아이디어가 창작윤리면에서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지만, 일단 효과는 만점이었다. 책을 구매한 고객 가운데 상당수가 인상적인 표지그림에 호기심을 느꼈다고 할 정도다.

짧지만 간결한, 단 네 글자의 제목도 매력적이다. 외국책 제목의 경우 보통 부제로 많이 쓰고 국내판에는 새로운 제목을 다는 경우가 많은데, 편집진은 고민끝에 원제 ‘Life Lessons’를 그대로 살렸다.

‘성공’을 추구하는 책들이 쏟아지는 요즘 서점가에서 삶과 자아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이 책의 내용이 차별화의 요소로 작용한 것은 물론이다. 이는 20대 위주의 독자들을 넘어 30대 이상, 그리고 40대 독자들까지 끌어들이는 힘을 더해줬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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