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들여다보기/말리와 나
미국에서 현재 가장 유명한 개는? 적어도 최근 1년 동안만을 본다면 아마 ‘말리’란 개일 것 같다. 이 개의 주인이 쓴 책 <말리와 나>가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미국 주요 베스트셀러 순위에 50주째 올라있고, 지금까지 무려 250만부나 팔렸다. 그런데, 이 개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해질 태세다. <말리와 나>가 지난 9월 국내에서도 출간되면서 빠르게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한달도 채 못되는 동안 8만부나 팔렸다. 초반에는 오히려 출발이 더뎠는데 인기에 가속이 붙어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9월 첫째주 28위에서 넷째주 19위, 다섯째주 7위로 쑥쑥올라가고 있다.
미국에서 200만부 넘게 팔린 검증된 히트작이니 국내에서도 잘 팔리는 것도 사실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외국에선 대단한 인기를 누린 책이어도 국내에선 시큰둥한 반응을 얻은 책이 수두룩하다. 문화 차이가 필요없는, 누구나 보면 좋아하는 ‘개’라는 보편적인 소재를 다뤘으니 인기는 보장된 것 아니겠냐고? 실제 서점에 가보면 개에 대한 책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정작 개에 대한 책 치고 베스트셀러 된 책은 뜻밖에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말리와 나>의 힘은 더욱 강렬해 보인다.
이 책을 쓴 사람은 미국 저널리스트 존 그로건이다. 막 결혼한 그로건의 집에 말리란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 개 한마리가 새식구로 들어온다. 가족이 새로 탄생한 시점에 합류한 이 개는 그로건네 가족이 완성된 시점인 13년 뒤 숨을 거둔다. 말리는 죽었지만 말리를 잊지못한 그로건은 말리에 얽힌 추억을 연재했고, 이 글이 인기를 모아 책으로 나온 것이다. 개에 대한 이야기지만 동시에 ‘가족’에 대한 따듯하고 정겨운 논픽션인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내용은 ‘사랑스럽고 깜찍하고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말리는 정말 완벽하게 ‘못말리는 개’다. 수의학적으로 정확히 표현하자면 ‘주의결 결핍 및 과잉행동 장애’를 지녔고, 쉽게 말하면 ‘약간 미친’ 개다. 몸무게가 40㎏에 힘이 세서 저지르는 사고의 정도가 실로 심각하다. 천둥이 치면 날뛰기 때문에 창고에 가둬놔야 하는데, 천둥이 지나가 문을 열어보면 창고를 초토화한 수준을 넘어 벽을 부숴놓았을 정도다.
그런데도 주인 가족은 이 인내심을 시험하는 개를 버리지 않고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말리의 파괴력 못잖게 주인에 대한 사랑과 충성도 강력했던 모양이다. 말리가 사고를 쳐 입힌 처리 비용은 실로 엄청나서, 지은이는 “말리에게 들어간 비용과 말리가 망가뜨린 것을 복구하는 비용을 다 합치면 작은 요트라도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할 정도다. 그럼에도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문간에서 하루 종일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요트가 과연 몇 척이나 되겠는가? 주인의 무릎 위로 올라가거나 주인의 얼굴을 핥으며 터보건을 타고 언덕을 달려 내려가는 순간을 즐기는 요트가 몇 척이나 되겠는가?”
미국에서와 국내에서 공히 이 책의 열혈 독자들이 보인 반응은 같았다고 한다. “말리보다 우리 개가 더 악동”이라는 피드백을 보인다는 점이다. 개를 키워본 사람들은 알 수 있는 감정을 이 책을 통해 같이 느끼고 자기 개를 떠올리는 것이다. 편집자 이화경씨는 “가족과 조건없는 사랑이란 두 가지가 완성되어 가는 이야기, 그토록 사고치는 개를 데리고 사는 주인의 여유와 유머가 독자들을 감동시킨 것 같다”고 분석했다.
책의 성공요인에는 물론 다른 요인들도 여럿이다. 지은이가 직접 찍은 말리 사진을 그대로 쓴 표지는 아주 평범하지만 개가 무언가 말하려는 듯 호소력이 강해 서점에서 독자들의 손을 사로잡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여기에 이 책을 올해 자사 최고 상품으로 만들어내야만 한다고 보고 출판사가 마케팅 총력전을 펼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책 출간에 맞춰 대형 ‘도그쇼’에 부스를 만들어 책 홍보를 하기도 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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