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가 독자에게
영국 인구의 상당수가 금리생활자라는 얘길 들었다. 논밭이나 공장에서 뼈빠지게 일하지 않고도 영국사람들 대다수는 죽도록 일하는 아시아, 아프리카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잘 산다. 영화 같은 데서 가끔 보는 영국인들의 우아한 생활을 지탱해주는 금리라는 게 형태야 천차만별이겠지만 결국은 이자라는 것인데, 영국 전체로 보면 그게 그 나라 안에서 그저 뻥튀기하듯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바깥 어디에선가 흘러들어오는 것 아니겠는가. 요컨대 영국이 그만큼 잘 살면 다른 어딘가는 그만큼 못살게 돼 있다. 세계는 제로섬에 가깝다. 국제법이다 질서다 조약이다 하는 것들이 어쩌면 그게 정당하다는 걸 선포하는 의식이나 요식행위 같은 것이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게 바로 힘이요, 그 실체가 군사력이라면 너무 간 건가. 한 사회가 길러내는 지식인, 지적 노동자는 대개 그런 힘과 질서를 강제하는 묘안을 짜내고 그것을 정의로 포장하는 직업에 종사하면서 비교적 높은 수익을 보장받는 자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어디 영국만이겠는가. 미국과 일본과 서유럽이 그렇고, 우리마저도 어느새 그 질서 저 아랫쪽 자리 하나 얻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오늘날 우리 사회를 미쳐 날뛰게 하는 과외열풍, 조기유학 열풍이라는 것도 결국 어떻게든 그 질서의 윗쪽으로 한걸음이라도 더 다가가려는, 조금이라도 더 남 위에 올라타 앉아 우아해지고 싶어 안달하는 이기의 적나라한 몸부림이 아니겠는가.
<로컬푸드>에 나오는 미네소타 남동부 농업경제 얘기가 그런 상념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재주는 농민들이 넘고 돈주머니는 가공·운송·중개업자들이 챙겼다. 미국에서조차 소비자가 음식에 1달러를 지불할 때 농민 몫으로 돌아가는 것은 1910년엔 40센트가 넘었으나 1997년에는 고작 7%, 7센트로 급감했다. 갈수록 불평등해져가는 국제사회의 농민은 누구며 가공·운송·중개업자는 또 누구겠는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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