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가 독자에게
지난 6월 <한국전쟁>을 낸 정병준 목포대 역사문화학부 교수는 책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지난 과거는 다가올 미래의 서막이다.(What is past is prologue.)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the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NARA)에서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현판의 경구다. 셰익스피어 희곡 <템페스트>에서 따온 이 문장은, NARA 기관지 <프롤로그>의 제호로도 사용된다. 현재가 과거의 지배 아래 놓여 있으며, 미래가 축적된 과거의 반영임을, 역사적 안목이 선지자적 예언에 속하기보다는 냉정한 분석과 관찰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음을 뜻하는 문구다.” 결국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말과도 통한다.
정 교수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핵심부분 가운데 하나를 연구하기 위해 미국에 가서 국립문서기록관을 뒤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브루스 커밍스가 한국현대사 연구의 거목이 된 것도 그가 미국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기억들중 많은 부분은 나라 바깥에 나가 있다. 기억의 디아스포라.
얼마전 한국 민주화운동사에 관한 자료들을 일본 대학과 개인, 연구기관 등에서 다량으로 쓸어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조만간 우리는 다시 자신의 현대사를 연구하기 위해 일본에 가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우리 기억의 많은 부분은 일본에 가 있다. 고대 이래 지금까지 한국사는 일본에 간 숱한 이땅의 흔적들을 살펴보지 않고서는 온전히 그려낼 수 없다. 그것은 침략과 식민지배 등을 통한 기억의 약탈 탓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무관심과 무능 탓도 크다. 와다 하루키 회고록을 읽으면 새삼 그런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 찾아야 하는 한국 초창기 디지털 유산, 박상준의 에스에프 얘기, <일본서기>, <미디어렌즈>, <하워드 진>, 이관술 얘기, ‘안과 밖’이 다룬 이스라엘 문제, 그리고 캄보디아에서 70년대의 한국 개발독재를 본 유재현의 ‘세설’ 등도 공통분모는 기억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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