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가 독자에게
강호가 어드메뇨?
<소오강호>의 감독 쉬커(서극)는 말한다. “사람 있는 곳에 은원이 있기 마련이고 은원이 있는 곳엔 강호가 있다.” 이를 “짧게 이야기하자면 사람이 있는 곳이 곧 강호”라고 요약한 황희경은 지금 중국에서 무협지, 무협영화, 무협음악, 무협여행, 무술학교 등 ‘무협경제’가 붐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혹시 무협경제가 활성화하는 것은 시장경제가 등장하면서 ‘강호’가 점차 냉혹하게 변화되고 있으며, 또한 도처에서 ‘강호’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다닌다는 ‘서방불패’라는 ‘괴물’ 때문은 아닐까.”
<루가노 리포트>는 ‘I = C × T × P’라는 기묘한 방정식을 들고 나와 강호 질서 문란자는 바로 신자유주의와 그 수혜자들이라고 갈파한다. 이철기에게 강호 교란자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문제를 정권탈환을 위한 도구로만 파악하는 꽉막힌 보수우익집단이다. “(임진왜란)4백년 뒤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단지 그 대상이 명나라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동아시아 국제정세 변화에 둔감해 친명사대주의로 나라를 망친) 그 악역을 보수언론들이 앞장서 맡고 있는 것 같다.” 서경식에게 그것은 여전히 동서양 도처에 스며있는 식민주의다.
차라리 어지러운 강호를 훨훨 떠나버릴까.
“위험은 사람을 중독시키는 것 같아요. 줄을 묶지 않고 매우 위험한 상황에서 등반할 때 팔다리는 가벼워졌고 호흡도 매우 미묘한 변화를 보였습니다. 몸이 생리적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상태에 이르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강렬한 열정이 마구 샘솟습니다.” <그들은 왜 오늘도 산과 싸우는가>에서 암벽등반가인 수학자 존 길은 말했다. 존 크라카우어는 “그 순간 내 삶 전체를 통틀어 가장 행복했다”고 두 손이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게 굳어가면서 죽음과 대면했던 북극지방 등반을 회상했다.
아니면 춘포짜던 노 부부 백순기 이종순의 소박하고 맛깔스런 끝없는 수다의 세계로 들어가볼까.
하지만 인간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면 어딜 가든 강호가 아닌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하지만 인간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면 어딜 가든 강호가 아닌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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