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가 독자에게
나무와 숲, 들풀에 관심을 기울이고 지키는 일을 다른 생명체들에 대한 무한 이타행위, 또는 고귀한 선행 쯤으로 예찬하거나 유한계층의 위선적인 사치로 비아냥대는 사람들이 있다. 또는 기껏해야 좀더 우아하고 여유있는 삶을 위한 투자쯤으로 여기거나.
좀 막연하지만, 언제부턴가 환경이나 생태 보호, 배려가 다른 생명체나 그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 그리고 바로 나 자신이 숨쉬고 살아가기 위해 실천하지 않으면 안될 계책이라는 생각이 강력하게 가슴과 머리통을 채우기 시작했다. 무슨 부처님 마음이 갑자기 생겨서가 아니라 지극히 타산적으로 이기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종내에는 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저들을 살리지 않으면 나도 함께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생각 말이다.
길을 내고 건물을 짓기 위해 별 생각 없이 산이나 언덕을 마구 잘라내고 헤집어 놓거나, 오로지 사람들 편의를 위해, 또는 사람 눈에 보기 좋으라고 숲이나 풀을 사정없이 베어 내고 가로수 가지들을 전기톱으로 싹쓸이를 해버리는 꼴을 보면 연민과 함께 부아가 치민다. 농약 등 화학약품을 살포하는 사람들이 때로 저승사자처럼 보였다. ‘에프킬라’ 따위 모기약도 치워버렸다. 더 잘 살자고 하는 그런 짓들이 실은 너도 죽이고 나도 죽는 공멸의 자살행위라는 것, 인간이라는 한 생물종이 이상 증식을 하면서, 마치 특정 박테리아가 특정 환경에 적응하면서 폭발적으로 번식해 주변의 다른 생명체들을 전멸시키고 결국은 자신도 소멸하듯, 자멸로 치닫고 있는 것이라는 상상은 세월이 흐를수록, 인간의 파괴력에 비례해 점점 또렷해졌다. 민주화 이후 정권들이 그나마 남아 있던 그린벨트마저 야금야금 허물어가는 덴 배신감마저 느꼈다.
우석훈의 ‘날아라, 시대의 팅거벨’과 황대권의 민들레 얘기가 그런 상상을 다시 자극한다. 화천 상서우체국장 조희봉 얘기도 다른 삶을 생각하게 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