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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뼛속까지 드리운 ‘식민’의 그늘

등록 2007-05-03 16:42

<생활속의 식민지주의> 미즈노 나오키 외 지음. 정선태 옮김. 산처럼 펴냄. 1만2800원
<생활속의 식민지주의> 미즈노 나오키 외 지음. 정선태 옮김. 산처럼 펴냄. 1만2800원

잠깐독서 /

정근식 서울대 교수는 10년 전 한센병 역사를 연구하려고 소록도 요양소 노인환자들을 인터뷰했는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처음 인터뷰할 때 노인은 2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조금씩 뒤로 물러나더니 몸의 방향도 정 교수에 대해 90도로 돌려 딴 쪽을 향했다. 정 교수가 다시 그 앞으로 가서 처음 자세를 취하면 어느새 그 노인은 또 물러나 몸을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 그것은 일제 패망 50년이 지나도록 없어지지 않은 식민지 흔적이었다. 일제 때인 1917년 개원한 소록도 요양소 환자들은 그렇게 철저히 비환자와 구분되고 일정한 거리에 다른 방향으로,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 위치해서는 안되는 존재로 길들여졌다. 그런 규칙을 어길 때는 처절한 체벌이 가해졌다. 그때의 환자 신체작법, 행동규범을 뜻하는 ‘환자심득’이 1996년 인터뷰 노인에게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던 것이다.

한센병 환자들만 그랬을까? 물론 그랬을 리 없다. 일본제국과 자본의 논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노동력과 군사력, 곧 ‘근대적 신체’ 배양에 필수불가결한 식민지 ‘심득’은 조선사람 일상생활 모든 곳에 스며들었고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한반도와 대만 사람들 육체와 정신 속에 강력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6월항쟁이 상징하는 한국의 민주화는 군사독재체제 유제의 청산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체제와 겹쳐 있던 식민지주의의 해체과정이기도 했다.

미즈노 나오키 교토대 교수에 따르면 일제는 태평양전쟁 시기 국가총동원체제 이전까지는 조선인들의 일본식 창씨개명을 막거나, 허용하더라도 일본인과는 구분되는, 즉 조선인임이 쉽게 드러나는 창씨개명만을 허용했다.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는 급여의 차이가 있고 적용 법규도 달랐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제가 식민지배질서 유지를 위해 의도적으로 성골민족과 6두품민족을 갈랐다는 걸 의미한다.

조선이나 대만에서 ‘동화와 배제’를 특징으로 한 일제 식민지주의는 정치나 경제 영역만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이상으로 문화와 사상,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 침투했다.

책은 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의 2002년 여름 공개강좌 강연내용을 수정 보완해 묶은 것이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간과돼온 식민지배와 식민주의 연구를 되살리고 옛 식민지들만이 아니라 일본 자체도 왜곡시키고 있는 ‘근대’문제를 다시 생각해보려는 시도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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