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새벽(한국시각) 독일 슈투트가르트 경기장에서 열린 2006 월드컵 3, 4위전 독일-포르투갈 경기 때 독일국기 응용 디자인 제품들을 걸친 독일인들이 열정적으로 자국팀을 응원하고 있다. 슈투트가르트/연합뉴스
니체에서 히틀러까지 공격적 민족주의
월드컵서 개방적이고 섹시한 코드로
독인인들, 경계심 사라진 외국시각에 안도
이제 경직되지 않은 건강한 민족주의
소수민족과 이민자에게도 증명할 차례
월드컵서 개방적이고 섹시한 코드로
독인인들, 경계심 사라진 외국시각에 안도
이제 경직되지 않은 건강한 민족주의
소수민족과 이민자에게도 증명할 차례
안과 밖 이래도 되는 것인가? 흑-적-황의 독일 국기가 거리를 휩쓸고, 여기저기서 국가를 시도 때도 없이 부르며, 목이 터져라 ‘도이칠란트, 지상의 최고’를 환호해도 되는 것인가? 이미 독일은 그 몹쓸 민족주의 이념을 완전히 극복했으며, 조국이나 애국심과 같은 것들에 대한 강조는 구시대의 유물로 합의된 사항이 아니던가. 애국심이란 일종의 마약과 같은 존재였고, 야만으로의 퇴보를 의미하는 일이었지 않나. 독일이 민족과 애국을 외칠 때에는 언제나 주변 국가들과 충돌했고, 그 결과는 늘 파국으로 끝나지 않았던가. 비스마르크가 그랬고 1차 세계대전이 그랬으며, 히틀러가 그랬고, 또 2차 세계대전이 그랬다. 전후에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거리에서 국기를 흔들거나 자동차에 매달고 ‘도이칠란트 도이칠란트’를 외치는 이들은 더운 여름에도 검은 가죽장화에 반짝이는 머리를 드러낸 스킨헤드거나, 외국인들에게 욕설이나 테러를 가하는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아니었던가. 1815년 예나의 자유주의적 학생단체에서 시작된 흑-적-황의 삼색기는 그 후 1848년 3월 베를린과 많은 도시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때 민주와 자유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를 국기로 사용했던 바이마르 공화국은 나치에 자리를 내줘야만 했다. 히틀러 이후 일반 시민들이 떳떳하게 자신의 발코니 한 켠에 국기를 달아매기는 어려웠다. 독일에서 국가나 국기는 늘 무언가를 울부짖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의 것이었다. 자연히 보통사람들은 이런 모습들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면서 이를 부끄러워하거나, 적어도 이처럼 드러내놓고 국기를 흔들고 애국심을 표현하는 행위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런데 경기장도 아니고 거리에서 이마에 국기를 그리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너 민족주의자지?”라고 ‘욕’을 해도 더 이상 스스로를 변호하거나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사회로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어제까지 눈살 찌푸리게 만들던 바로 그 모습들이 이제 갑자기 젊고, 신선하고, 도시적이고, 개방적이고, 쿨 해보이며, 섹시해 보이기까지 한다. 바뀐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새로운 트레이닝 전술과 예상을 뛰어넘는 대표팀 선발로 팀의 색깔을 바꾸는데 성공한 마흔 한 살의 독일 감독 유르겐 클린스만은 월드컵 개막 직전까지 축구협회와 언론으로부터 끊임없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던 그가 하룻밤 사이에 국민적 영웅이 된 것이다. 경기가 모두 끝난 뒤 그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모두 소진되어 더 이상 대표팀을 맡을 수 없노라며 중국인 부인과 아이들이 기다리는 캘리포니아로 돌아갔다. 신선한가. 어떻게 갑자기 한 사회의 전체적 분위기가 어제까지의 긴장과 우려에서 갑자기 집단적 도취와 파티분위기로 돌변할 수 있었을까? 도대체 무엇이 변한 것일까? 극우파들의 국기, 환호의 국기로 물론 세상에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한 듯 갑작스러운 것은 없다. 동서독이 통일되던 날도 그랬고, 1990년 로마 월드컵대회에서 우승할 때도 사람들은 미친듯 국기를 흔들었었다. 이후 점차 늘기 시작한 이러한 현상은 그 결정적 변화의 계기를 찾고 있었고, 마침 2006년 월드컵이 그 적절한 기회를 제공했다고 설명하는 것이 논리적일 것이다. 하지만 “왜 우리는 다른 나라처럼 민족애나 애국심을 터놓고 드러내지 못하나요?” 라고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열 살 박이처럼 이야기할 수는 없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민족적인 것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어오지 못했다. 민족이란 개념은 히틀러 이전부터 우려할만한 대상이었다. 루터에서 시작하여 니체와 바그너, 비스마르크와 히틀러에 이르기까지 독일의 애국주의는 언제나 공격적이었으며 폐쇄적이고 반계몽적인 이념이었다. 서방의 여느 국가들과 달리 비스마르크의 ‘철혈정책’은 민주주의와 자유의 개념을 민족이나 국가적 통일의 개념과 결합시키지 못하였다. 전통적으로 독일의 보수주의자들은 좌파를 자신들과 같은 민족 구성원에 속할 수 없다고 보았으며, 이들 좌파들도 언제부턴가 이를 받아들여 스스로를 민족이라는 개념 밖의 국외자로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과거에 국기를 휘두르며 환호하는 행위가 일종의 집단적 열등감의 표현이었다면 이제 그것은 자신감의 표현이 되었다. 국가의 합창은 11명 대표 팀에 대한 감사와 인정의 표시이지 더 이상 쇼비니즘의 표출이 아니다. 과거에 이러한 현상을 아우슈비츠의 기억을 부정하고자하는 행위로 받아들였다면, 오늘날 독일의 젊은이들은 국기를 흔들고 국가를 부르는 행위와 유대인 학살의 죄과를 인정하는 문제가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독일인들의 전쟁범죄와 책임의 문제는 이미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이고, 더 이상 이 문제가 독일사회를 이해하는 핵심으로 작용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정말 이러한 환호와 자부심, 환희와 열광이 민족주의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일까? 무엇보다 독일 신세대의 국기에 대한 환호를 애국심이나 조국에 대한 사랑고백으로 무겁게 치장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자유와 개인주의가 묻어 있다. 이러한 가벼운 애국주의가 의미하는 것은 기분이나 분위기에 좌우되는 애국주의이며, 미국이나 프랑스에서의 애국주의와는 그 구성요건이 다르다. 서구의 애국주의는 역사적으로 성립된, 일종의 의식과 같은 것이며, 좌파와 우파를 두루 아우를 수 있는 정치적 코드이다. 이들은 민족과 자유를 동시에 약속하는 역사적 전통을 바탕으로 발전했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연결되어 있다. 프랑스인이 국기를 흔드는 것은 국가성립의 기반, 즉 1789년 프랑스 혁명과 인권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다. 그에 반하여 오늘날 독일에서의 애국주의는 갑작스런 현상이고, 화려하며 다양하지만 쉬 바뀌는 팝 문화와 같은 그런 일종의 유행이다. 국기와 국가적 상징물들은 응원도구였으며, 젊은이들은 월드컵을 단지 파티에 이용한 것 뿐이었다. 다른 나라의 애국주의 목록에는 군사적 강건함에 대한 자부심이 들어있는 반면, 이들의 애국주의는 “조국이여 단결하라”와 같이 위로부터 내려온 구호와는 관계가 먼 현상이다. 독일사회의 이런 변화는 “우리는 다시금 누구인가?”라는 오래된 정체성의 문제를 화두로 던진다. (이제?) 파티는 끝났고 손님들은 돌아갔다. 깃발은 게양대에서 내려져 보관함 속으로 들어갔고, 독일인들은 다시 베를린인이나 함부르크인으로, 혹은 유럽공동체의 시민으로 돌아갔다. 세계는 독일의 이러한 변화를 더 이상 우려의 눈길로 보려하지 않는다. 아니 이를 일종의 ‘정상성의 회복’으로 보고 격려해주기까지 하지 않는가. 독일인들은 이제 외국인들의 시각이 예전과 같은 경계의 눈빛이 아님에 안심한다. 코피 아난은 월드컵이 끝난 월요일 아침 방송에 출연하여, 세계는 독일의 과장된 애국주의에 대하여 더 이상 겁내하지 않는다며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와 독일사회의 변화를 축하했다. 걱정했던 네오나치나 훌리건의 등장도 통제되었고, 축제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안전이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며 대회가 치뤄졌다는 것이 국내외의 일치된 평가이다. 어쩌면 그것은 일종의 안도감의 집단적 표현이었다. 대회 주최국으로써 체면을 구기지 않을 정도로 축구실력을 발휘 했으며, 무엇보다도 이제 우리도 주변의 눈치 볼 것 없이 남들처럼 깃발을 흔들고 국가를 부르며 기뻐할 수 있구나 하는 안도감. “마침내 우리 독일인들도 정상적이 되었다.” “우리는 너무도 오랫동안 국가와 다른 민족적 상징들을 우파들에게 맡겨두었었다.” “나치로 오해받지 않으면서 독일에 대해 자랑스러워하자 - 그것은 가능하다!” 그것은 동시에 인정과 칭찬의 힘이기도 하였다. 잘 조직된 대회, 세계로의 개방성, 환호의 능력에 대한. 그들은 스스로의 해냄이 대견스러웠던 것이다, 마치 4년 전의 한국처럼. 정상성 회복 격려에 스스로 뿌듯
이진일/튀빙겐대 역사학 박사, 성균관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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