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을 이프가니스탄에서 철수시키라고 요구하는 시위대가 26일 서울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
혼란 빠진 ‘아프간 피랍’…한계 드러낸 정부 대책반
부분석방 ‘위험한 도박’ 개입 여부 등 도마 올라
탈레반-아프간 정부 사이 ‘샌드위치’ 전락 비판
부분석방 ‘위험한 도박’ 개입 여부 등 도마 올라
탈레반-아프간 정부 사이 ‘샌드위치’ 전락 비판
아프간 한국인 납치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을 놓고 중간평가를 한다면 결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감안한다 해도 26일 드러난 결과는 참담하다. 정부 표현대로 그동안 다양한 경로를 통한 ‘접촉과 대화’는 한계를 드러냈다. 단순히 원점으로 돌아간 정도가 아니다. 석방되려던 8명의 행방이 한때 파악되지 않고, 1명이 살해된 것은 상황이 더욱 악화된 것으로 봐야 한다. 게다가 상황 장악력이 약화되면서 앞으로의 교섭에서 주도권 상실이 우려된다.
정부는 납치사건 발생 뒤인 지난 20일 외교부 제1차관을 대표로 하는 정부대표단 파견과 아프간 정부대책회의에 문하영 본부대사(전 우즈베키스탄대사)를 참여케 하는 등 전체적으로 교섭을 주도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라는 자가 매일 협상시한을 설정하고 인질 살해를 위협했는데도, 시한을 무시하지도 시한에 얽매이지도 않는 균형된 자세로 적절히 대처했다.
문 대사의 아프간정부 대책 회의 참여는 외교적으로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고 ‘파격’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군사작전에 대해선 사전동의를 얻어내 아프간 정부의 일방적 행동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탈레반쪽이 애초에 요구했던 아프간 철군 문제는 연말까지의 철수 일정을 제시해 미리 김을 빼는 선수를 쳤다. 수감된 탈레반 반군의 석방으로 요구조건이 바뀌면서는 탈레반쪽이 우호적 ‘러브콜’을 보내며 한국과의 협상을 희망하는 이상한 장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드러나지 않은 데 있었다. 백종천 대통령 특사의 파견이 현지 대책반의 한계를 반증하는 것이다. 24일 수감자 맞교환 요구와 몸값 해결설이 동시에 제기됐을 때 현지의 정부 대책반은 어떤 역할을 했는가가 중요하다. 아프간 정부는 몸값 해결쪽으로 기울었다. 부분 석방의 전략인 셈이었다. 그러나 이는 탈레반 강경파들을 자극했고, 협상에 대한 배신으로 간주됐다. 대책회의에 참여한 문하영 본부대사는 어떤 판단을 했는가. 본부의 훈령을 받아 움직였겠지만, 현장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결과적으로 협상에 혼선을 초래한 일차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부분 석방전략은 매우 위험한 도박이다. 대가가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납치범을 자극해 배 목사가 살해된 데서 입증되듯이 다른 두 곳의 인질들은 그만큼 더 위험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석방될 것으로 기대되던 8명이 중간에 행방이 묘연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현지대책반은 어떤 판단을 했으며 얼마나 개입했는가? 정부내에서 특정인의 자질이 거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분 석방전략은 실패했고, 1명의 희생자만 냈다. 탈레반 수감자 석방에 반대한 아프간 정부에 휘둘린 결과가 됐다. 또 8명 인질의 부분석방 과정은 한국이 철저히 배제된 채 진행된 게 아닌가라는 의혹마저 낳고 있다. 따라서 정부 협상대표단에 대한 평가는 냉정할 수밖에 없다. 아프간 정부와 혼연일체가 돼 탈레반쪽을 압박하고 고립시키거나 회유해 효과적으로 제어했다는 평가를 받기 힘들다. 오히려 탈레반 쪽의 교란전술과 아프간 정부의 완강한 석방거부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강태호 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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