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여성 부사관이 상관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는 신고를 한 뒤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13일 피해자의 빈소가 마련되는 대전 유성구 국군대전병원 앞 도로를 군사경찰 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성추행 피해 공군 중사 사망 사건에 대한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해군에서 또 성추행 피해를 당한 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극이 되풀이됐다. 공군 중사 사망 사건으로 온 나라가 들끓었던 시기에 또 다른 성추행 사건이 은폐된 채 ‘2차 가해’가 이뤄지고 있었다니 말문이 막힌다. 국방부가 군내 성범죄에 대한 엄정 대처와 재발 방지를 그토록 강조했는데도 일선 부대에서는 콧방귀만 뀌고 있었다는 말밖에 안 된다. 도대체 이런 군대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숨진 ㄱ 중사는 지난 5월27일 직속 상관인 ㄴ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그 며칠 뒤인 6월1일 공군 중사 사망 사건이 공개되면서 파문이 일었다. 그런 상황인데도 ㄱ 중사의 피해 사실을 보고받은 주임상사는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국방부와 해군은 ㄱ 중사가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변명하지만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은 성범죄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즉시 상관이나 수사기관에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더구나 ㄱ 중사를 업무에서 배제하는 등 2차 가해가 이어진 정황까지 드러나고 있다. 그렇게 70일이 넘도록 피해자-가해자 분리 등 기본적인 보호 조처나 가해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채 사건이 은폐·방치된 것이다.
ㄱ 중사는 지난 9일 정식 신고를 한 뒤에야 가해자와 분리돼 다른 부대로 전출됐다. 그리고 사흘 뒤 숨진 채 발견됐다. 그 사이 8차례나 성고충상담관과 통화를 했다고 한다. 심적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케 한다. 용기를 내어 피해 사실을 신고한 ㄱ 중사가 끝내 극단적 선택을 한 경위가 한 점 숨김 없이 밝혀져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격노’하고 엄정한 수사를 지시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병영에서 성범죄가 빈발하는 현실과 이에 아무런 경각심을 느끼지 못하는 야만적 군 조직문화에 대해 국민들이 느끼는 감정은 ‘격노’ 이상일 것이다. 공군 중사 사망 사건 이후 국방부가 성범죄 예방과 대응에 관한 수많은 지시를 내렸음에도 이 같은 비극이 재연됐다는 점에서 군 지휘체계와 기강이 바닥까지 추락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가해자와 은폐·2차 가해 가담자 등을 엄히 처벌하는 것은 물론, 각급 지휘관들의 지휘 책임도 가차없이 물어야 한다. 서욱 국방부 장관도 더 이상 문제를 대처해나갈 능력이 없음이 분명해졌다. 직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
나아가 군내 성범죄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 대책 마련을 이제 더는 군에만 맡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군의 특수성을 방패막이로 삼게 놔둘 수 없다. 범정부 차원에서 한층 강화된 기준을 적용해 대대적 수술에 나서야 한다. ‘우리 아이가 마지막 피해자가 될 수 있도록 재발 방지를 부탁드린다’는 유족들의 가슴 아픈 소망을 결코 외면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