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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성폭력 사망사건 ‘공군 판박이’…‘같은 부대’서 또다른 성추행도

등록 2021-08-13 13:14수정 2021-08-14 00:57

피해 보고받은 상사, 가해자에 구두경고 한번뿐
ㄱ중사 피해 사실은 구체적 언급조차 안 해
같은 부대서 또…장교가 부사관에 성적 불쾌감 발언
해군 여성 중사가 남성 상사에게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는 신고를 한 후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중사의 빈소가 마련된 대전 유성구 국군대전병원에 13일 오후 근조화환을 실은 화물차가 들어가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해군 여성 중사가 남성 상사에게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는 신고를 한 후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중사의 빈소가 마련된 대전 유성구 국군대전병원에 13일 오후 근조화환을 실은 화물차가 들어가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성추행 피해를 당한 해군 여성 부사관이 ‘공군 성추행 사망 사건’에 이어 겨우 석달 만에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극이 발생한 배경엔 군 특유의 ‘은폐 문화’ 때문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피해 사실을 보고받은 상사는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명분으로 사건을 묵인했고, 국방부와 해군은 규정 탓만 하기 바빴다. 성추행을 당한 뒤 ㄱ중사가 ‘극단적 선택’에 내몰리기까지 70여일 동안 해군 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밝히는 게 이번 수사의 핵심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13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오전 해군 성폭력 피해 여중사 사망 사건을 보고받고, 공군에 이어 유사한 사고가 거듭된 것에 대해 격노했다”며 국방부에 “한 치의 의혹이 없도록 철저하고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평소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문 대통령이 ‘격노’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국방부와 해군은 이날 오전 국방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 사건의 파장을 축소하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이날 국방부와 해군의 설명을 모아 보면, 숨진 ㄱ중사는 ‘전투휴일’이던 5월27일 부대가 자리해 있는 인천 옹진군의 한 섬의 민간 식당에서 가해자인 ㄴ상사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부대에 새로 전입 온 지 사흘이 지난 시점이었다. ㄴ상사는 이 자리에서 “손금을 봐주겠다”며 손을 잡았고, 부대 복귀 과정에서도 피해자가 거듭 거부하는데도 이해할 수 없는 신체 접촉 시도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ㄱ중사는 사건 직후 평소 친분이 있는 주임상사를 통해 피해 사실을 보고했다. 국방부와 해군은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사건이 일체 외부로 노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음을 거듭 강조했다.

주임상사는 ‘외부 노출’을 우려하는 ㄱ중사의 뜻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사건과 관련해 사실상 아무런 ‘후속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해군 당국자는 “주임상사가 ㄴ상사를 따로 불러 ㄱ중사에게 가한 성추행 사실에 대해선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채 ‘행동거지에 주의하라’고 한 차례 주의를 준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대처한 이유에 대해 주임상사는 “ㄱ중사는 진급을 위해 섬 근무 지원을 자원했다. 이번 사건이 알려지면 본인에게 좋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추행 피해를 당한 뒤 그로 인한 불이익까지 걱정해야 하는 ㄱ중사의 곤란한 처지를 사건 ‘은폐’의 명분으로 삼은 셈이다. 그로 인해 사건 발생 후 70여일이 흐르는 동안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공간 분리’는 이뤄지지 않았고, 피해자가 납득할 만한 처벌과 징계 등 후속 조처도 이뤄지지 않았다.

국방부와 해군은 주임상사의 처신에 대해 규정을 내세워 가며 변호했다. 해군 당국자는 “성범죄 피해자가 원치 않을 경우에도 이를 신고해야 하는지에 대해 법령과 국방부 훈령 사이에 모순이 있다. 일선 부대에선 훈령을 우선시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을 보면, “군인은 병영생활에서 성추행 및 성폭력 행위를 한 사실을 알게 된 경우에는 즉시 상관 또는 군 수사기관 등에 신고해야 한다”(43조1항)고 정하고 있지만, 국방부의 부대관리훈령을 보면, “상담을 접수받은 성고충전문상담관은 피해자가 원할 경우 상담내용을 신고하지 않을 수 있다”(244조10항)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성범죄에 노출된 피해자의 심리에 대한 전문적 식견을 갖춘 ‘성고충전문상담관’에게 적용되는 규정으로 이를 근거로 주임상사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엔 적잖은 무리가 따른다.

피해자가 사건을 공론화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사건이 발생한 지 70여일이 지난 토요일(7일)이었다. ㄱ중사는 소속부대장과 감시대장 등 상관들과 면담을 요청해 피해 사실을 밝혔고, 이틀 뒤인 월요일(9일) 이를 정식 신고했다. 신고 이틀 뒤인 9일에야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분리 조처가 이뤄져 ㄱ중사는 평택에 자리한 2함대 육상 근무부대로 전출됐다. 해군 당국자는 “수사를 통해 70여일 동안 부대 내에서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면서도 “주임상사가 보고하지 않아 부대 내에선 아무도 이 사건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피해 직후엔 사건 자체를 인지하지 못해 대처하지 못했지만, 신고가 이뤄진 뒤엔 매뉴얼에 따라 신속하고 엄정하게 조처했다는 설명이다.

사건 신고일인 9일 평택으로 이동한 ㄱ중사는 이튿날 독신자 숙소를 배정받았다. 앞으로 머물게 될 숙소에 들어가 화장실 전등이 나갔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부대에 “전구를 교체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11일부터 19일까지 청원 휴가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감당해야 했던 심적 고통이 상당했는지 신고가 이뤄진 9일부터 숨진 12일까지 무려 8차례에 걸쳐 성고충상담관과 통화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7월26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청해부대 장병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와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욱 국방부 장관이 7월26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청해부대 장병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와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ㄱ중사의 주검을 확인한 것은 12일 전구 교체를 위해 방문을 두드린 이들이었다. 해군은 ㄱ중사가 “평소 일을 잘하고 상하관계가 좋은 부사관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남긴 유서는 없다. 휴대전화 등을 포렌식해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군은 또 유족들이 “가해자에 대해 ‘엄정하고 강력하게 처벌하고 조처해 달라. 우리 아이가 마지막 피해자가 될 수 있도록 재발 방지를 부탁드린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이번 해군 모 부대 여중사 사망과 관련해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유족과 국민들께 송구하다”며 “이와 관련해 사안의 엄중함을 고려해 국방부 조사본부와 해군 중앙수사대에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수사팀을 만들어 한 치 의혹 없는 수사를 진행해 유족과 언론에 소상히 밝히겠다”고 말했다. 서 장관 취임 후 벌써 일곱번째 나오는 대국민 사과였다. 가해자인 ㄴ상사에 대한 구속영장은 12일 청구됐고, 이날 영장실질심사가 이뤄질 예정이었다가 14일로 미뤄졌다.

이번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사건이 벌어진 같은 부대에선 위관 장교가 여성 부사관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발언을 한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이 남성 위관 장교는 지난 2~6월 여성 부사관에게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발언을 하고 숙소에 무단침입하는 등 부적절한 처신을 한 혐의로 군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군은 “해당 간부의 비위행위를 인지한 뒤 즉시 다른 부대로 파견조치하고 보직해임했다”며 “법과 규정에 따라 엄중 처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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