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의 세상속으로
홍세화의 세상속으로 / 고려대 출교생들 ‘귀환’ 현장에서
‘출교생 천막’ 2년만에 걷혔는데 ‘노동자 천막’ 무관심만 펄럭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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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를 찾았다. 본관 앞에 설치된 천막. 700일 동안 일곱 출교생의 거처였던 곳. 학생들은 출교 무효 및 퇴학 취소 가처분 신청에서 이겼다. 이제 교실과 도서관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학생을 찾아가는 심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착잡했다. 이랜드, 고속철도(KTX) 여승무원, 코스콤 …. 시간만 흘러가고 해결되는 일이 없다. 선거철의 현실정치인들, 물 만난 물고기들마냥 신문지상에 요란하게 등장한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이 처한 상황에 관해 고민은커녕 작은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다시금 ‘백골단’이 등장할 판이다. 사회정의는 간 데 없고 법질서만 나부낀다.
내 휴대전화는 코스콤 비정규 노동자들이 보낸 절박한 메시지들로 가득하다. 오늘 한겨레신문사 층계참에서는 ‘알리안츠생명’의 파업 노동자가 일인시위를 벌였다. 총파업 사태를 심층 보도해 달라는 간절한 요구가 담겼다. 우리는 해결되어야 할 사안이 해결되지 않은 채 시간을 끌면 시간이 흘러간 그만큼 무관심해진다. 힘 없는 자신을 확인하는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서다. 사회구성원들이 점차 외면하거나 외면하고 싶어 하면서 관련 기사를 찾기 어려워진다.
노동자가 아닌 학생이어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법은 최소한의 상식이라고 했다. 그런데 대학에서 발생한 문제를 법의 힘을 빌려야 했다.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이 오늘 한국에서 보여주는 모습이다. 19세기에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는 대학 문을 닫았다. 대학이 자유정신, 비판정신의 거처였기 때문이다. 오늘 한국에선 그럴 필요가 없다. 나는 36년 전 대학에서 제명되었다. 중앙정보부와 시경 대공분실에서 별 것 아니지만 아직 뇌리에 남아 있는 단련을 받은 뒤 대학에서 쫓겨날 때 당국자들은 계면쩍어했다.
공권력의 강요보다 무서운 게 ‘자발적 복종’이다. 학생들은 처음 출교처분 소식을 듣고 경악했다고 한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른바 교수들을 ‘감금’했기 때문. 고려대에 새로 편입된 보건대학생들에게 총학생회장단 선거 투표권을 주자는 학생들의 요구안을 학교 당국자는 ‘고압적이며 관료적인 태도’로 끝까지 수령을 거부했다. 본질은 가려진 채 학생들에 대한 마녀사냥이 시작되었고 ‘조중동’이 열심히 거들었다. ‘교수 감금’ 사태 당시 그 자리에 있던 100여명의 학생 가운데 학생 대표가 아닌 7명이 출교당했다. 그 전 해 가을 이건희 삼성 회장에게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주는 것에 항의하는 시위를 주동한 게 진짜 이유임을 나중에 소송에 불리해지자 학교 스스로 드러냈다. 출교 무효 확인 소송에서 패한 학교 당국은 항소하고 또 퇴학 처분을 내리는 집요함을 보였다. 자본권력에는 자발적으로 복종하지만 학생들 앞에선 교수의 권위를 지키겠다는 것인가. 학생들은 대학의 의사결정구조가 비민주적이어서 대학내 민주주의가 사회 상식에 훨씬 못 미친다고 했다.
700일 간의 천막생활. 여름과 겨울이 가장 견디기 어렵다고 했다. 그런 중에 이랜드 파업 점거농성 소식에 가장 기뻐했다는 학생들은 이제 학교로 돌아간다. 분명한 사실은 그들만큼은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 쳐 있는 천막들을 무관심하게 지나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영상 이규호 피디 pd295@hani.co.kr
법원의 퇴학 효력 정지 결정으로 2년 동안의 천막농성을 끝내고 복학하는 고려대 출교생들이 20일 오전 서울 안암동 고려대 본관 앞에서 “도와준 학우들과 교수님께 정말 감사드린다”는 글을 읽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영상 이규호 피디 pd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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