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가 독자에게
지난 10월2일 한신대 철학과 윤평중 교수가 메일을 보내왔다. “11월 초에 발간될 <비평> 재창간호에 실리는 저의 리영희론”이라며 ‘이성과 우상-한국현대사와 리영희’라는 제목의 논문 한 편과 함께 리영희 선생께, 또 가능하다면 임헌영 선생께 그 메일을 그대로 전달해달라는 부탁 내용을 담고 있었다. 선생들에게 전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지키지 못해 송구하다. 내게 선생들과의 별다른 통로가 있는 것도 아닌 데다, 그런 정도의 내용을 미리 알리고 싶다면 좀 다른 방식으로 직접 선생들에게 전달하는 게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냥 내게 한번 읽어보라는 거겠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다고 발표가 한 달도 더 남은 민감한 논문에 대해 미리 이러니 저러니 기사로 쓰기도 그렇고….
너무나 소박하고 비체계적, 직관적, 파편적, 논의 자체가 부재, 자본주의의 우상을 부순 자리에 리영희가 세운 것은 바로 사회주의의 우상, (중국 문화대혁명에 대한) 해명은 주관적으로 옹색하며 객관적으로 비학문적, 시장맹, 북한맹, 공허하고 무책임한 동어반복적 소망 표출, 통일논의 진전에 전연 기여하지 못한다, 조야하고 도식적인 그의 인본적 사회주의….
“냉전반공주의의 음험한 본질과 은폐된 작동기제를 폭로하는데 있어 한국현대사에서 리영희처럼 투명한 이성을 나는 알지 못한다”는 극찬이 앞서긴 했지만 논문에 전편에 수없이 깔린 그런 과격한(?) 언표들을 읽을 때 나는 몹시 불편했다.
대상이 그 누구든, 어떤 것이든 정당한 비판은 언제나 정당하다. 리영희 선생인들 예외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내가 윤 교수에게 몇 가지 조목조목 적어 보낸 답신은 흔쾌하지 못했다. 우리에게 깊은 민족적 시련을 안겨 준 서방 근대와 그들의 민주주의와 시장 만능이 결코 우리에게 대안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썼다. 나의 리 선생 평가는 윤 교수가 그토록 의기양양하게 지적한 문제들을 이미 넘어선 곳에서 그것을 딛고 선 것이라고 나는 감히 생각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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