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가 독자에게
“친일 엘리트들은 그때가 언제일지 자신들도 모르면서 친일을 정당화하고 동포를 동원하려고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는 구호를 즐겨 썼다. 그러나 자신들 생애에는 결코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막연한 그 날이 어느날 갑자기 ‘도둑처럼 찾아왔을 때’ 후일을 대비해 그들이 도모해 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친일 영화인들의 주장과는 달리, 기술적으로 우수한 일본과 합작한 결과 조선영화에 남은 것은 의존심뿐이었다. 기자재와 기술문제를 전적으로 일본에 의존하여 해결해 왔던 그들로서는 새로 생긴 국경이 한스러울 뿐이었다.”(<투시하는 제국 투영하는 식민지>)
광복은 친일파들에겐 악몽이었으며 동족은 오히려 적이었다. 사대주의자들의 뒤틀린 심리는, 파고들면 아주 구체적인 이해관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걸 이 글에서도 재확인할 수 있다.
서경식 교수가 <심야통신> 이번 호 글에서 다룬 게르첸의 비극은 인간성과 진보에 대한 성찰로 우리를 이끌어가지만, 또한 시대와 환경에 휘둘리는 약한 인간존재에 대한 깊은 회의와 서글픔도 안겨준다.
“아들 알렉산드르에게 끼친 그 (신년 축하모임의 감동적인) 영향은 일시적인 것이었다. 세상의 여느 자식들처럼 그도 부친의 신들을 숭배하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그는 부친처럼 앞뒤 재지 않는 낭만적인 1830년대의 공기속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 영국 빅토리아조의 견실한, 들뜬 1850년대에 성장했다. 혁명도 그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도 지도 위에서 보는 하나의 명칭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결코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았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러시아어는 점차 그의 집에서 들을 수 없게 됐다.”
서 교수는 그 세대간 단절의 비극을 재일동포 1세와 2세, 2세와 3세 간의 얘기로 읽었지만 어디 재일동포뿐이랴. 이 땅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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