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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난해한 ‘황무지’ 명쾌한 해설

등록 2007-02-15 15:35수정 2007-02-15 15:40

18.0˚가 독자에게

인간이 벌이는 전쟁이 하나뿐인 지구 자체를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파괴력이 커지고 처절무비해진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의 일이다. 1차 세계대전은 세상을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간 현대문명의 광기가 임계치를 넘어 작렬한 자멸의 서막이었다. 이젠 강과 바다도 더 이상 사랑과 구원의 물이 아니다. 템스강은 여전히 고요히 흐르지만 요정들은 이미 떠나갔다. 그 자리엔 가스공장이 들어서고, 쥐들이 운하를 차지하고, 잿빛 스모그 속에 돈에 혈안이 된 장사꾼들이 보험증서나 들고 뛰어다니는 “기름과 타르”로 찌든 곳이 됐다. 황무지는 우리들 자신이 스스로 만든 재앙의 굴레였다. 시인은 유럽의 구체적인 소시민들의 삶을 통해 전쟁과 현대문명의 불모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우리는 어쩌다가 이 아름다운 터전을 황무지로 만들게 됐나? 어떻게 해야 우리는 구원될 수 있는가? 우리가 지은 죄는 무엇이고, 그 죄에서 구원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진실은 고통스럽기에 차라리 망각속에 안온하게 살고 싶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더 이상 봄비를 기다리지 않는다. 봄비가 내리는 4월은 약간의 생명만 유지하며 망각과 무지에 갇혀 살고 싶은 현대인들에게는 가장 잔인한 달이다. 사람들은 아무도 싹을 틔우길 원치 않는데 자연은 재생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박혜영 인하대 교수가 ‘고전 다시읽기’에서 풀어놓은 깊고 명쾌한 해설을 이 정도나마 거칠게 독해한 뒤 T.S. 엘리어트의 <황무지>의 이 유명한 일절을 다시 읽었더니, 놀랍도다, 그 골치아픈 난해시가 이렇게도 절절하게 다가오다니!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생명을 길러주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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