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는 지금
이란이나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도록 압박하고 있는 나라들은 역설적이게도 대부분 핵무기로 완전무장한 나라들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독일 등인데, 이들 중 독일을 빼고 나면 모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핵무기 독과점국들이다. 핵확산금지조약(NPT) 가맹국이 그들은 핵무기 해체 및 개발금지 약속을 자신들은 지키지도 않는 주제에 NPT가 허용한 타국의 평화적 핵 개발조차도 선별적으로 반대하면서 여차하면 선제공격을 해서라도 저지하겠고 필요하면 핵무기까지 사용하겠다고 으름짱을 놓고 있다. 미국은 핵무장 능력의 유지·개선을 위해 임계치 이하 핵실험을 계속해왔으며 벙커버스터 따위 소형 핵무기 개발에 안달하고 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자국 이익을 침해하는 테러 지원국들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전략무기(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경고했다. 부도덕의 극치다.
그나마 저들의 행보는 최소한의 공정성마저도 결여돼 있다. 예컨대, 같은 약자들이라도 핵무기를 갖거나(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 핵에너지 개발(일본·브라질 등)을 해도 눈감아주는 나라들이 있고, 절대 안되는 나라들이 있다. 그 극단으로 갈리는 선택기준은 단순명쾌하다. 그들 편이냐 아니냐, 그들 말을 잘 듣느냐 아니냐다. 미국은 결코 애매한, 또는 중립적인 자세를 용납하지 않는다. ‘부시 독트린’의 “우리 편 아니면 적”식의 험악한 양자택일이 있을 뿐이다.
그런 대국들의 부도덕과 양자택일 강요가 지금의 이란과 북한을 만들었다. 가공할 핵무기를 들이대면서 우리 편이 되든지, 아니면 관두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대국들에 대처하는 방법은 두가지 뿐이다. 그 편에 붙어먹든지 자신도 핵무기나 그에 못지 않은 위협수단을 개발하는 수밖에 없다. 이란과 북한의 정권은 후자를 택했다. 그 결과 그들은 더욱 보수화하고 쇼비니즘(국수주의)적·억압적·퇴행적으로 될 수밖에 없었다. 내부의 피폐와 통치 실패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면서 정권의 정당성과 안정성을 꾀하는 건 모든 권력이 빠져드는 정해진 이치다. ‘적대적 공생’의 악순환도 거기서 비롯된다.
일본과 한국은 ‘붙어먹는’ 쪽을 택했다. 주일미군 재편문제로 오키나와가 시끄럷지만, 자위대 강화와 미군-일본군 일체화를 통한 글로벌 차원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향해 일본이 일로매진하고 있을 때도 ‘동북아 균형자’니 ‘자주’를 외치며 제갈 길을 찾는 듯했던 ‘노 정권’이 결국 두 손 들고 다시 일본 따라가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지난 19일 제1차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존중한다고 합의해준 게 그것이다. 좋아할 사람 많겠다.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했는데, 존중할까? 지난 1백년간의 악연과 업보가 모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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