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가 독자에게 /
“그가 국가와 민족대계를 조금이라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더라면 위화도에서 압록강은 건넜어야 옳다. 그 거리 불과 몇 미터, 여의도에서 강북으로 오는 거리보다 좁다. 그 몇 미터만 건넜더라면 그 광막한 요동이 조선왕조에 속했을 것이다. 위화도에서 회군함으로써 우리민족은 영원한 우리의 고향에 넘지 못할 금줄을 스스로 그어버리고 만 것이다. 오호 통재라!”
도올 김용옥의 <요한복음 강해>(통나무)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 다음 ‘옹졸하기만 한 좌절의 역사’라는 소제목이 붙은 곳에는 “왜적을 잘 무찔렀다는 죄밖에 없는” 의병장 충장공 김덕령을 “쌩으로 패 죽인” 얘기와 아직도 굿판에서 빠지지 않는 최영 장군의 억울한 얘기가 이어진다. 그러면서 한민족을 유대민족에 비기고, 한국기독교를 “세계 기독교의 생명력”으로 파악하는 도올의 시선에서는 그의 종교관뿐 아니라 독특한 세계관, 역사관을 읽을 수 있다. 동의 여부야 어떻든 그는 용기가 있고 그의 얘기에는 힘이 있다.
60줄을 바라보는 도올의 거침없는 얘기들은 점차 한 줄기로 꿰어지고 있다. 불교 얘기를 하든 기독교 얘기를 하든, 또는 조선 얘기를 하든 미국 얘기를 하든 각자 산발이 아니고 거기엔 한줄기로 묶이는 흐름이나 지향점 같은 게 있다. 논란중인 그의 요한복음 해석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는 갈수록 민족쪽으로 기울면서 과격(?)해지고 있다. 포괄적 의미에서의 혁명(!)을 꿈꾸고 있는 건가. 대입 참고서 같은 제목의 그의 <논술과 철학강의>(통나무)를 읽어 본다면 아마 동의할 것이다. 그의 얘기를 제대로 따져 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선은 요즘같은 세상 풍토에서 그 나이에 그토록 쉬지 않고 파고들면서 읊고 외칠 수 있다는 게 놀랍고도 통쾌하다. 도올판 ‘호연지기’랄까. 어쨌든 그것부터 흔쾌히 인정해서 나쁠 게 있을까.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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