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경찰이 카불에서 북동쪽으로 50㎞ 떨어진 미군의 바그람 기지로 통하는 도로에서 한 승객을 자동차에서 내리게 한 뒤 몸수색을 하고 있다. 카불/AFP 연합
임현주씨 ‘CBS인터뷰’ 내보내 미국 겨냥한 메시지
특사 도착 시점 맞춰 경고…협상 막바지 심리전 치열
특사 도착 시점 맞춰 경고…협상 막바지 심리전 치열
“우리는 매우 아파요. 도와주십시오. 매일 힘겹게 지내고 있습니다.”
납치 일주일째인 26일 밤, 탈레반에 억류된 한국인 인질 임현주(32)씨의 애원하는 육성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인질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전해진 몇 시간 뒤, 탈레반 대변인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협상 시한을 27일 오후 4시30분(한국시각)으로 연장하면서 “이번 협상 시한이 마지막이며 이때까지 결과가 없으면 인질을 모두 ‘처형’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시한을 넘기고도 협상은 계속됐고, 미라주딘 파탄 가즈니 주지사는 <신화통신>에 시한이 다시 연장됐다고 밝혔다.
27일은 백종천 대통령 특사가 아프간에 도착해 아프간 정부와 협상을 시작한 시점이다. 한국 정부의 대통령 특사와 아프간 대통령이 만나는, 이번 납치사건의 ‘분수령’을 겨냥해 탈레반의 협상 전술이 숨가쁘게 펼쳐졌다.
인질 고난 내세운 압박 전술=탈레반이 배형규 목사를 살해한 뒤 임현주씨를 통해 인질들의 처참한 생활을 알리게 한 것은 압박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다. 임씨는 납치 세력의 휴대전화로 파키스탄에 있는 언론인과 인터뷰를 했고, 이 내용은 미국 <시비에스>(CBS) 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임씨 육성을 미국 언론에 공개한 것은 자신들이 요구하는 수감자-인질 맞교환의 최종 ‘결정권’을 쥔 미국을 겨냥한 메시지로도 해석할 수 있다. 아마디 탈레반 대변인은 24일 <아프간이슬라믹프레스>(AIP)에 “우리는 한국 정부에, 미국 정부를 설득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 목사가 살해된 뒤 나머지 인질 22명은 안전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도 보여 줘, 한국 특사가 도착한 시점에 본격적 협상을 벌이겠다는 뜻도 전한 셈이다.
강경·온건파 양동작전=현재 인질들을 나눠 억류한 탈레반 온건파와 강경파는 협상 주도권 투쟁을 벌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심리전의 양상도 치열해지고 있다. 한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들 강경파와 온건파는 각자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고, 나름의 홍보망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정보를 흘리는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즈니주 현지 탈레반 사령관이란 인물은 26일 <아사히신문>에 “협상 시한과 관계없이 날마다 인질을 한 명씩 살해하겠다.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 동료 석방에 응하겠다고 하면서도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위협했다. 아마디 대변인은 <알자지라>에 “무함마드 무니르 망갈 아프간 내무차관과 접촉해 석방을 원하는 8명의 명단을 전달했고, 정부는 수감자들이 곧 석방될 것이라고 말했다”며 8명 맞교환이 성사될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반면, 임현주씨를 억류하고 있는 세력은 임씨가 “그들은 돈을 원해요”라고 말하도록 해 몸값 요구도 하나의 카드임을 시사했다. 강경파 얘기를 반영한 보도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온건파와 접촉한 언론들은 피랍자들이 곧 풀려날 것처럼 보도하는 혼선이 빚어지는 것이다.
긴장감 고조 심리전=협상이 막바지로 치달을수록 심리전의 강도도 강해질 전망이다. 이종화 경찰대 교수는 “탈레반 쪽이 또다시 협상 시한을 단기적으로 연장해 극적인 긴장감을 계속 줌으로써 상대를 압박하고 있다”며 “임현주씨의 인터뷰도, 한국 국민들에게 제2, 제3의 배형규 목사가 돼서는 안 된다는 여론을 불러일으켜 정부를 압박하는 카드”라고 분석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무장단체들도 배 목사 살해 뒤 진압 위험에 위협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여성을 내세워 인질들이 건강하게 살아 있음을 알려 줌으로써 안전을 도모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민희 손원제 기자 minggu@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