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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시험보다 치열한 도서관 자리전싸움, 우정 핑계로 맡아주는 얌체짓 그만!

등록 2006-06-20 16:42수정 2006-06-21 15:18

조은경  기자
조은경 기자
대학별곡 /

지하철 문이 열린다. 일단 뛴다. 개찰구를 지나고 교문을 지나고 머리카락이 휘날리도록 뛰어본다. 드디어

도착한 도서관. 그러나 어디에도 이미 자리는 없다. 내일은 첫차를 타고 나오리라 다짐을 하지만 오늘은 어디에서 공부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원래 도서관이란 학구열을 뿜어내는 사람들로 북적북적대야 제 맛이지만 기말고사 기간의 도서관은 그야말로 시장바닥이다. 시험기간이면 도서관 앞에서 줄을 서 새벽부터 기다려야 한다는 조혜자(동국대 식품공학 4학년)씨는 “새벽 5시부터 줄을 서야 괜찮은 자리에 앉을 수 있다”며 벌써부터 기말고사 시작이 두렵다고 고개를설레설레 젓는다.

마음먹고 일찌감치 집을 나서 도서관에 자리를 잡으면 그때부턴 자리 잡기의 달인들을 만날 수 있다. 사물함을 통째로 비워 왔는지 책을 한 보따리 안고 오는 한 사람. 눈치를 슬쩍 보더니 한 자리에 하나씩 책을 던져놓는다. 간혹 정성을 기울이는 달인들은 책을 펴 놓고 펜도 한 자루 놓아두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한다.

아예 살림을 차린 사람들도 있다. 독서대는 물론, 방석, 슬리퍼, 각종 세면도구까지 모두 구비해 둔 책상은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도 치우기가 껄끄럽다. 한 대학 열람실에는 아예 개인 사물함까지 등장했다. 열람실 구석에 버젓이 사물함을 갖다 놓는 얌체들이 등장한 것. 학교 측에서는 사물함을 치우지 않으면 강제 수거하겠다는 공고를 붙였지만 별 소용이 없다.

도서관 좌석 배정기가 있는 곳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좌석 배정기가 설치된 경우에는 학생증이 있어야 좌석을 배정받을 수 있고 일정 시간 이후에 연장하지 않으면 좌석이 자동 반납된다. 이 시스템을 역이용하면 책 한권 놓아두지 않고도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학생증 체크를 대신 해줄 친구 하나만 있으면 준비 끝. 이화여대 고유선(언론홍보영상 4학년) “좌석 배정기에 줄을 섰을 때 앞에서 학생증을 가득 들고 하나씩 찍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나쁘다”며 “그런 불편함 때문에 도서관에 잘 가지 않게 된다”고 밝혔다.

시험기간이면 친구들의 자리를 대신 맡아주는 역할을 주로 한다는 ㅇ씨(고려대 국문과 4학년)는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할 때도 있지만 친구들이 부탁하는 데 안 들어주기도 난처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난 중간고사 기간에 친구들의 학생증을 대신 체크하다가 뒷사람과 말다툼이 벌어질 뻔한 이후로는 학생증을 여러 장 체크하는 것은 피하고 있다고 한다.

각 대학들은 도서관 자리 맡기 행위를 막기 위해 고심중이다. 연세대 원주 캠퍼스의 경우 중앙도서관에 지문인식기를 도입했다. 개인정보 침해라는 불평 때문에 시험기간에만 일시적으로 운영하지만 자리를 맡아주는 학생은 많이 줄었다. 서울대에서는 도서관자치위원회가 열람실을 관리한다. 도서관자치위원회는 옐로·레드 카드제를 시행한다. 이 제도는 일정 시간 이상 자리를 비우거나 다음 날을 위해 책을 두고 가는 좌석에 옐로 카드나 레드 카드를 붙이고 좌석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책을 회수하는 제도다.

고려대, 서강대 등에서는 한 시간 이상 좌석을 비우면 지정된 좌석을 회수한다. 한 시간은 밥먹기에도 빠듯하다는 불평도 있지만 이 제도가 시행된 이후 주인 없이 책만 놓여진 좌석 수는 줄어들었다.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도서관이 자리 맡기로 몸살을 앓는다. 책이 스스로 공부하지는 않을텐데 하루 종일 책만 놓여 있는 좌석들은 자리를 찾아 헤메는 학생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당신이 자리 잡아 준 그 친구.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더니, 당신의 장학금 가로채어가네!” 부산대 도서관 좌석 배정기에 붙어있는 문구다. 기말고사 기간을 맞아 다시 시작될 자리전쟁에 대한 선전포고인 셈인데, 자극 받지 않는 양심은 버려두고 경쟁심을 건드리는 이 말도 어쩐지 씁쓸하기만 하다.

조은경/ <고대신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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