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공대에서 17일 열린 희생자 추모 기도회에서 한 학생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블랙스버그/AP 연합
대학 늑장대처 지적 잇따라…치안 확보 대책에 관심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과 관련해 미국의 주류 언론들은 한국 시민권자인 범인 조승희씨의 최근 행적과 한인 사회의 우려 분위기를 비중있게 다루었으나, 그가 한국계라는 사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언론들의 시선은 주로 △총기 규제 강화 논란의 재연 △학교 캠퍼스 치안 강화를 위한 대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8일 ‘버지니아 총잡이, 재학생으로 밝혀져’라는 기사에서 조씨가 1992년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이민 온 영주권자라는 사실을 짚었고 ‘총잡이 분노와 고립의 기미 보여’라는 기사에선 ‘외톨이’ 신세로 지냈던 조씨의 사생활을 소개했다. 신문은 또 버지니아공대의 많은 동포 학생들이 사건 이후 대학 캠퍼스를 떠나거나 부모들이 학생들을 집으로 데려갈 준비를 하는 등 보복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의 린튼 윅스 기자는 <연합뉴스>에 “조씨는 20년 가까이 이곳에서 미국식으로 자랐기 때문에 그를 미국인으로 생각한다”며 “이번 사건으로 이곳 한국 동포들이 위협을 받을 것으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앞으로의 토론 주제: 대학은 총기를 금지해야 하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번 사건으로 미국 사회에서 총기 규제 찬반 논란이 뜨거워질 것으로 전망했다. 신문은 8년 전 ‘콜럼바인 사건’의 범인은 불법으로 총기를 소지한 미성년자였으나, 조씨는 합법적으로 총기를 구입한 점에 주목했다. 미국 영주권이 있는 합법적인 체류자인데다 범죄 기록이 없는 성인이기 때문에 총기 구입에 어떤 걸림돌도 없었다는 것이다. 제2의 조씨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경각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논란이 총기 규제로 이어질지엔 회의적이다. 워싱턴의 ‘총기폭력저지연맹’ 상임국장인 조슈아 호로위츠는 “(이번 사건에도 불구하고 총기규제 관련 법안이) 의사당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히려 버지니아공대가 캠퍼스에서 모든 형태의 총기 소유를 금지했다는 점에서 총기 보유 옹호 단체들의 목소리를 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32개 주는 대학 당국의 허가가 있을 경우 숨겨진 형태로 총기를 캠퍼스에 들여올 수 있다. 총기 보유 옹호 단체들은 버지니아공대 안의 총기 소지가 허용됐다면 “희생자들이 그렇게 순한 양처럼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언론들은 이번 참사에 대학 당국의 경고 신호 발동이 늦은 탓이 컸다고 지적한 뒤, 캠퍼스의 치안 확보 대책에 큰 관심을 보였다. <엔비시> 방송은 18일 “이번 비극은 캠퍼스 치안 확보를 위한 기술과 훈련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며, 미래의 대학은 현재 미국 고교와 더욱 비슷한 모습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수천명의 학생들에게 즉시 잠재적 위협을 경고하는 통신 체계를 갖추게 될 것이며, 더 많은 금속탐지기, 대학 경찰 손에서 더 많은 총기를 보게 될 것이라고 방송은 전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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