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공식 확인한 바는 없으나 다수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이스라엘과 최근 핵실험 사실을 공표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전혀 다란 대응자세는 핵에 관한 이중잣대의 전형이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 존 볼턴 유엔주재 미국대사가 지난 11일 유엔본부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 및 일본 대표와 북한 핵실험 이휴 문제에 대해 논의한 뒤 기자들을 만나고 있다. 뉴욕/AFP 연합
미국과 친한 이스라엘 핵보유 눈감고 북한엔 경제봉쇄 압박 ‘이중잣대’
대화 귀막고 대북 고립책 고집하는 미국 한반도 평화 진정 바라는지 의심
대화 귀막고 대북 고립책 고집하는 미국 한반도 평화 진정 바라는지 의심
[안과 밖] 북한과 이스라엘 핵보유에 대한 미국의 ‘이중잣대’
영국 프랑스 덕에 핵개발하고 미국이란 든든한 뒷심 지닌 이스라엘은 핵실험할 필요를 못 느낀다. 안보불안 높아진 북한, 핵무기로 세력균형 꾀하고 핵실험 강공수로 북미대화 끌어내길 바랐다.
주먹 센 놈이 뒷골목을 평정하는 게 세상 이치다. 국제질서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미국 정치학계의 거목 한스 모겐소는 국제정치를 ’힘을 위한 투쟁‘이라고 규정했다. 모겐소 같은 현실주의 정치학자들에게는 힘이 바로 국제정치를 풀이하는 주요 분석단위다. 힘이 있느냐, 힘의 균형이 이뤄져 있느냐로 국제정치를 풀이한다.
20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핵무기는 고전적 힘의 균형 개념을 깨뜨리는 힘을 지녔다. 그것은 곧 ‘공포의 균형’이다. 핵전쟁이 일어날 경우 전쟁의 승패를 떠나 핵공격으로 서로를 파괴해버릴 것이다. 이른바 ‘상호확증파괴’의 공포는 우리 인간들이 불쑥불쑥 느끼는 핵전쟁에의 충동을 그나마 눌러 왔다.
“핵전쟁에서 승자가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핵무기는 나름의 전쟁 억제력을 지녀왔다. 그러나 조지프 나이를 비롯한 여러 국제정치학자들은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므로 핵무기의 전쟁억제론이 언제나 통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왔다. 문제는 만에 하나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국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년)가 좋은 본보기다. 이 영화는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힌 몇몇 사람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말미암아 우발적으로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핵전쟁이 벌어진다면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죽음을 맞는 ‘운명의 날’(doomsday)이 오리라”는 경고를 우리에게 전한다.
1960년대 초 미국의 존 케네디 대통령은 “1970년 말에 이르기 전에 지구상에는 핵보유 국가들이 20개국에서 25개국쯤에 이를 것”이라 내다봤다. 케네디 대통령의 그런 예측이 나오기 전에 핵보유국이 된 나라는 미국(1945년), 러시아(1949년), 영국(1952년), 프랑스(1960년) 등 네 나라.
북, 핵실험 안한 이스라엘과 달라 우리 인류에겐 다행스럽게도, 핵국가가 20-25개국에 이를 것이란 케네디의 예측은 맞지 않았다. 그 뒤로 지금껏 4개국이 핵실험에 성공했을 뿐이다. 중국(1964년), 인도(1974년), 파키스탄(1998년), 그리고 북한(2006년)이다. 이스라엘은 핵실험 없이 핵보유국으로 이름을 올린 단 하나의 국가다. 1970년 막을 올린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기존 핵보유국 중심의 전형적인 ‘불평등조약’이라 욕먹긴 하지만, 지금까지 각국의 핵무장 유혹을 막는 데 나름의 억지력을 보여 왔다. 지난 10월9일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나서, 날마다 언론은 후폭풍을 전하느라 바쁘다. 덩달아 미국의 자칭 타칭 ‘한반도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바빠졌다. 그들은 ‘개구리처럼 어디로 튈지’ 예측이 어려운 북한 지도부 손에 핵무기가 들어갈 경우, 지구촌이 얼마나 위험해지는가를 앞다퉈 설명한다. 그럴수록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물음. 북한이 이스라엘처럼 핵무기를 그냥 갖고 있을 것이지, 왜 구태여 실험을 해서 유엔제재라는 불이익을 불렀을까? 핵실험을 한다면 북한이 바라는 대로 미국이 직접대화에 나설 것이라 기대를 했을까? 지금 이스라엘은 200기쯤의 핵무기를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정부는 핵무기 보유 사실을 인정한 바 없다. 핵실험은 더더군다나 없었다. 이 같은 애매모호한 태도를 가리켜 ‘확인도 부인도 안 한다’는 뜻을 지닌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또는 ‘전략적 애매모호’라 일컫는다. 다시 말해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이다. 이스라엘은 1960년대 초반부터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사막의 디모나 원자력연구소에서 핵무기를 만들어 왔다.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개발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 용기 있는 이스라엘 기술자에 의해 밝혀진 바 있다. 그곳에서 9년 동안 기술자로 일했던 모르데차이 바누누다. 1986년 바누누(당시 33살)는 자신이 일했던 디모나 지하 제2작업장에서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생산라인을 찍은 필름 두통을 영국기자에게 건네주었다. 디모나가 그동안 섬유공장으로 위장한 채 핵무기를 만들어 왔음이 분명해졌다. 그 일로 바누누는 18년 징역형을 살았고, 2004년 봄에야 풀려났다. 바누누의 폭로 뒤로도 이스라엘 정부는 핵무기 보유사실에 대해선 아예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 주변 아랍국들이 이스라엘 핵 보유 자체를 “뻥이야“라며 이스라엘을 넘보지 못한다. 이스라엘 핵보유를 둘러싼 진실게임은 이미 끝났다. 이중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외부인의 접근을 막는 디모나 원자력연구소를 둘러봤던 2004년 5월의 어느 날, 예루살렘의 한 오래된 교회에서 바누누를 만난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 그에게 폭로 동기를 물었다. “바깥 세상에다 디모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알리려 했다. 중동에서 또다른 홀로코스트(대학살)가 일어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스라엘 핵무기 사찰을 벌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국제사회로부터 이중 잣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바누누의 말대로 이스라엘은 미국의 ‘이중 잣대’ 덕에 아무런 논란 없이 조용하다. 반미 핵국가로 떠오른 북한과는 너무나 처지가 다르다. 따지고 보면, 이스라엘의 핵무기 개발과 보유는 서구 강대국들의 합작품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고, 그 뒤로는 미국의 묵인이 따랐다. 일찍이 1917년 외무장관 밸 포어의 이른바 ‘밸 포어 선언’으로 유럽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이민 길을 터주었던 영국은 이스라엘에게 핵무장의 길도 터주었다. 1959년과 1960년 2번에 걸쳐 영국은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20톤의 중수(重水)를 비밀리에 이스라엘에 팔아넘겼다. 프랑스도 이스라엘 핵무장을 도왔다. 디모나의 기본설비인 150㎿ 규모 중수로를 프랑스로부터 들여왔다. 그렇다면 미국은 그런 사실들을 몰랐을까. 1960년대 초 케네디 행정부의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는 훗날 “미국은 영국과 핵폭탄 정보를 공유했기 때문에 영국이 이스라엘에 중수를 팔았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 발뺌했다. 이스라엘이 핵무기 제조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몰랐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그 뒤가 더 중요하다. 미국-이스라엘 동맹은 깨뜨릴 수 없는 옹벽이다. 미국은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뒤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표결 때 무려 32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스라엘이 핵확산금지조약에도 가입 안하고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을 피해온 것도 다 미국 덕이다. 미·일 중심 동북아 구도 고착 우려 앞서 바누누의 말대로 미국은 이중 잣대로 북한을 잰다. 북한은 이스라엘과 형편이 너무 다르다. 미국 같은 든든한 방어벽도 없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지난 1991년 동맹국 소련이 붕괴되고 중국-러시아가 남한과 국교를 맺은 뒤부터 줄곧 안보위기를 느껴오던 터였다. 이 글 맨 앞에 핵무기는 고전적 힘의 균형 개념을 깨뜨린다고 했다. 북한 지도부가 “핵무기를 가져 미국 우위의 한반도 세력불균형을 바로 잡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일부 심약한 사람들에겐 가슴 떨리는 일이고, 한반도 비핵화를 거스르는 일이지만) 한스 모겐소의 세력균형론에 비춰보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합리적 결정이다.
그런데 북한은 이스라엘처럼 핵을 보유만 한 게 아니라 실험으로 나아갔다. 이는 결국 그동안 부시 행정부의 ‘북한 몰아세우기’ 강공책이 낳은 부산물이라 여겨진다. 북한이 핵실험 강공수를 빼든 것은 미국과의 직접대화로써 현안(금융제재, 북미수교 등)을 정면 돌파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작용했을 것이다. 핵실험에 따른 일시적인 대결국면 뒤 대화마당이 열리기를 바란 것으로 보인다. 올바른 북한전문가들이 지적하듯, 평양의 대외정책은 결코 고립정책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의 대북정책이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쪽이다.
안타깝게도 10월14일 유엔 안보리 결의안 내용은 사뭇 북한을 압박하는 수준이다. 그 결의안이 한반도 평화에 실제로 도움이 될 것인지 의심스럽다. “북한이 핵무기를 끌어안고 굶어죽도록 만들자”며 북 핵실험 전부터 금융제재를 비롯한 강경책으로 북한을 옥죄야 한다는 미국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그리던 구도나 다름없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미일동맹의 동북아 패권구도를 고착시키는 쪽으로 가는 게 아닐까.
김재명/〈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국제분쟁 전문기자 kimsphoto@hanmail.net
북, 핵실험 안한 이스라엘과 달라 우리 인류에겐 다행스럽게도, 핵국가가 20-25개국에 이를 것이란 케네디의 예측은 맞지 않았다. 그 뒤로 지금껏 4개국이 핵실험에 성공했을 뿐이다. 중국(1964년), 인도(1974년), 파키스탄(1998년), 그리고 북한(2006년)이다. 이스라엘은 핵실험 없이 핵보유국으로 이름을 올린 단 하나의 국가다. 1970년 막을 올린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기존 핵보유국 중심의 전형적인 ‘불평등조약’이라 욕먹긴 하지만, 지금까지 각국의 핵무장 유혹을 막는 데 나름의 억지력을 보여 왔다. 지난 10월9일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나서, 날마다 언론은 후폭풍을 전하느라 바쁘다. 덩달아 미국의 자칭 타칭 ‘한반도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바빠졌다. 그들은 ‘개구리처럼 어디로 튈지’ 예측이 어려운 북한 지도부 손에 핵무기가 들어갈 경우, 지구촌이 얼마나 위험해지는가를 앞다퉈 설명한다. 그럴수록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물음. 북한이 이스라엘처럼 핵무기를 그냥 갖고 있을 것이지, 왜 구태여 실험을 해서 유엔제재라는 불이익을 불렀을까? 핵실험을 한다면 북한이 바라는 대로 미국이 직접대화에 나설 것이라 기대를 했을까? 지금 이스라엘은 200기쯤의 핵무기를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정부는 핵무기 보유 사실을 인정한 바 없다. 핵실험은 더더군다나 없었다. 이 같은 애매모호한 태도를 가리켜 ‘확인도 부인도 안 한다’는 뜻을 지닌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또는 ‘전략적 애매모호’라 일컫는다. 다시 말해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이다. 이스라엘은 1960년대 초반부터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사막의 디모나 원자력연구소에서 핵무기를 만들어 왔다.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개발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 용기 있는 이스라엘 기술자에 의해 밝혀진 바 있다. 그곳에서 9년 동안 기술자로 일했던 모르데차이 바누누다. 1986년 바누누(당시 33살)는 자신이 일했던 디모나 지하 제2작업장에서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생산라인을 찍은 필름 두통을 영국기자에게 건네주었다. 디모나가 그동안 섬유공장으로 위장한 채 핵무기를 만들어 왔음이 분명해졌다. 그 일로 바누누는 18년 징역형을 살았고, 2004년 봄에야 풀려났다. 바누누의 폭로 뒤로도 이스라엘 정부는 핵무기 보유사실에 대해선 아예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 주변 아랍국들이 이스라엘 핵 보유 자체를 “뻥이야“라며 이스라엘을 넘보지 못한다. 이스라엘 핵보유를 둘러싼 진실게임은 이미 끝났다. 이중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외부인의 접근을 막는 디모나 원자력연구소를 둘러봤던 2004년 5월의 어느 날, 예루살렘의 한 오래된 교회에서 바누누를 만난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 그에게 폭로 동기를 물었다. “바깥 세상에다 디모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알리려 했다. 중동에서 또다른 홀로코스트(대학살)가 일어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스라엘 핵무기 사찰을 벌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국제사회로부터 이중 잣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바누누의 말대로 이스라엘은 미국의 ‘이중 잣대’ 덕에 아무런 논란 없이 조용하다. 반미 핵국가로 떠오른 북한과는 너무나 처지가 다르다. 따지고 보면, 이스라엘의 핵무기 개발과 보유는 서구 강대국들의 합작품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고, 그 뒤로는 미국의 묵인이 따랐다. 일찍이 1917년 외무장관 밸 포어의 이른바 ‘밸 포어 선언’으로 유럽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이민 길을 터주었던 영국은 이스라엘에게 핵무장의 길도 터주었다. 1959년과 1960년 2번에 걸쳐 영국은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20톤의 중수(重水)를 비밀리에 이스라엘에 팔아넘겼다. 프랑스도 이스라엘 핵무장을 도왔다. 디모나의 기본설비인 150㎿ 규모 중수로를 프랑스로부터 들여왔다. 그렇다면 미국은 그런 사실들을 몰랐을까. 1960년대 초 케네디 행정부의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는 훗날 “미국은 영국과 핵폭탄 정보를 공유했기 때문에 영국이 이스라엘에 중수를 팔았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 발뺌했다. 이스라엘이 핵무기 제조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몰랐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그 뒤가 더 중요하다. 미국-이스라엘 동맹은 깨뜨릴 수 없는 옹벽이다. 미국은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뒤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표결 때 무려 32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스라엘이 핵확산금지조약에도 가입 안하고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을 피해온 것도 다 미국 덕이다. 미·일 중심 동북아 구도 고착 우려 앞서 바누누의 말대로 미국은 이중 잣대로 북한을 잰다. 북한은 이스라엘과 형편이 너무 다르다. 미국 같은 든든한 방어벽도 없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지난 1991년 동맹국 소련이 붕괴되고 중국-러시아가 남한과 국교를 맺은 뒤부터 줄곧 안보위기를 느껴오던 터였다. 이 글 맨 앞에 핵무기는 고전적 힘의 균형 개념을 깨뜨린다고 했다. 북한 지도부가 “핵무기를 가져 미국 우위의 한반도 세력불균형을 바로 잡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일부 심약한 사람들에겐 가슴 떨리는 일이고, 한반도 비핵화를 거스르는 일이지만) 한스 모겐소의 세력균형론에 비춰보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합리적 결정이다.
김재명/〈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국제분쟁 전문기자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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