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박찬숙 의원 제공
전 위원들 확인…“내부고발 시도도 묵살”
영등위, 심의 탈법 일상화
영등위, 심의 탈법 일상화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성인오락기들이 대대적으로 확산된 배경에 대한 세간의 의혹이 커지는 가운데, 이들 오락기의 심의를 담당하고 있는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가 ‘위법적 심의’를 관행화했고 ‘심의 부조리’에 대한 내부 고발까지 묵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성인오락기 심의를 담당하는 영등위 아케이드게임소위 전 위원인 유청산(34)씨와 김혁(42)씨는 20일 각각 <한겨레> 취재진에게, 지난해 상반기 자신들이 소위 위원으로 재직할 당시 심의에 참석하지 않은 심의위원도 참석한 것처럼 회의록에 서명하는 일이 흔했고, 때로는 정족수도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심의한 일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2005년 초부터 그해 7월까지 아케이드게임소위 위원으로 활동한 유씨는 “소위 위원들은 회의가 시작한 뒤에 오거나 회의가 끝나기 전에 돌아가는 일이 많았고, 회의에 잠시라도 참석한 위원은 그날 심의한 모든 게임의 심의에 참여한 것으로 서명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졌다”고 밝혔다. 김씨도 “절차상 심대한 문제가 있었으나, 이런 행위가 당시 일부 위원들 주도로 관행화돼 버려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또 아케이드게임소위 담당이었던 영등위 게임영상부 강아무개씨도 이런 사실을 확인하며 “때로는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심의가 진행됐다”고 밝혔다.
유씨와 김씨는 또 “심의는 게임시장을 잘 안다는 심의위원을 중심으로 일방적으로 이뤄졌고, 몇몇 심의위원 주도로 자의적인 심의가 이뤄지기 일쑤였다”며 “이런 심의과정의 문제를 이경순 영등위원장에게 보고했으나 묵살당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해 가을 내가 국감 증인으로 채택되자 영등위 사무국 직원이 전화를 걸어와 ‘꼭 나가셔야겠느냐’고 출석 자제를 종용했고, 그 과정에서 국감 출석 대신 영등위원장과 직접 만나는 방안에 합의했었다”며 “그래서 국회 출석을 하지 않았는데, 그 뒤론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씨도 “지난해 <한겨레>에 ‘심의 부조리’가 보도된 뒤, 영등위원장에게 업계 유착 의혹과 자의적 심의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한겨레>가 입수한 영등위 아케이드게임소위 회의록이나 등급분류 결정서를 보면, 관행화된 부실 심의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등급분류 결정서에는 폭력성이나 사행성 등과 같은 세부항목에 ‘○’표만이 돼 있고, ‘결정 사유’ 항목엔 ‘특이사항 발견하지 못함’이 대부분이다. 심의위원 한명 한명이 어떤 의견을 냈는지 등은 물론, 심의 과정에서 나온 위원들의 의견이나 평가 등은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최근 ‘바다이야기’ 수사에 참여한 서울지검 수사관은 “영등위의 심의서류가 워낙 엉터리여서, 심의 과정이 적절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당시 심의위원들을 모두 불러 기억하는 것을 진술하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유신재 임인택 전진식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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