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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치매 시어머니 안 모시려는 건 아닌데…

등록 2006-09-26 19:21

김옥숙/소설가
김옥숙/소설가
희망나무 /

“형수님! 저희 집에 좀 오셔야겠어요. 애들 엄마가 집을 나갔어요!”
“동서가 집을 나가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머니 모시기 싫다고 가출했어요! 추석이 코앞인데, 이 일을 어쩌죠?”

지숙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담담했습니다. 올 봄부터 중풍에다 치매까지 앓고 있는 시어머니 때문에 동서가 힘들다는 전화를 자주 해왔지요. 중풍과 치매에 걸린 노인을 보살피는 일만큼 고된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동서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수고비와는 별도로 동서에게 화장품을 선물한다거나 조카들에게 도서상품권을 선물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동서는 외출 한번 자유롭게 못하는 자신이 마치 무인도에 조난당한 처지와 다를 바 없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서로 왕래하는 동네 아줌마 친구 하나도 없고, 모든 인간관계가 다 끊어져 버렸어요. 형님, 솔직히 어머니께서 빨리 돌아가셨으면 하는 그런 나쁜 생각도 든다니까요.”
“오죽하면 그런 생각이 들겠어. 동서 고생하는 거 내가 다 알잖아. 맏며느리면서 동서에게 책임을 떠맡기고 있으니 미안해 죽겠어.”

5년 전 시동생은 실직을 하자 생활비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에서인지 어머니를 모시겠다며 시댁으로 들어왔지요. 덕분에 시어머니를 모시며 전업주부로 살던 지숙은 분가를 해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입시학원의 수학강사인 지숙은 밤늦게 퇴근을 하기 때문에 도무지 시어머니를 돌 볼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동서가 가출했다는 전화를 받고 지숙은 남편과 함께 시댁으로 갔습니다. 집 안에는 악취가 풍기고 이사하기 직전의 집처럼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지요. 시어머니는 아들과 큰 며느리조차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의 상태가 더 나빠진 것을 보고 남편의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남편은 지숙에게 대뜸 직장을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전, 직장 그만두지 않겠어요. 대신, 어머니를 노인전문병원에서 운영하는 주간보호시설에 모시는 건 어떻겠어요?”
“어머닐, 요양원에 보내자는 말이야?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매정해?”
“그게 아니라 통원을 하면서 전문적인 재활치료도 받는 거예요. 며느리가 꼭 돌보아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진작 그렇게 했으면 동서가 가출까지 하진 않았을 텐데. 아직 늦진 않았겠죠?”
“그런 방법이 있다는 걸 몰랐군요. 애들 엄마도 어머니를 모시지 않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낮 동안이라도 잠시 숨을 돌리고 싶어서 그랬나 봐요.”


지숙은 베란다로 나갔습니다. 신선한 가을의 향기가 집안으로 들어오도록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었습니다.김옥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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