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숙/소설가
희망나무 /
그는 7년 만에 벌초를 하러 고향에 갔습니다. 고향을 지키고 있는 사촌 형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지요. 고향에 들른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서 있던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베어지고 그루터기만 흉하게 남아 있었지요. 베어진 느티나무를 보니 아주 낯선 동네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경지정리를 한다고 나무를 베어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는 마음이 심란해져 느티나무 그루터기 앞에서 한참 서 있었습니다. 어릴 적 그 느티나무는 멋진 놀이터였지요. 그때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다가왔습니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어린 시절 같이 뛰어놀던 동네 친구였지요.
“야! 이게 얼마 만이야? 벌초도 안 오기에 얼굴 잊어먹는 줄 알았지.” “사촌형님이 입원하시는 바람에 대신 온 거야. 그나저나 나는 이 느티나무가 베어진 줄도 모르고 있었어. 마음 한쪽이 푹 파여 나간 것처럼 가슴이 아프네.” “나도 벌초하러 내려올 때마다 그런 기분이 들어. 고향이 점점 예전 같지가 않아.” “세상이 무섭게 변하고 있는데, 고향만 그대로 남아 있길 바란다면 말이 안 되겠지. 소문 들으니, 자네, 건설업을 해서 돈을 엄청 벌었다던데?” “약간 벌기는 했어.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내가 잘 살고 있는가, 나는 행복한가, 이런 생각이 들어. 팔자 늘어진 소리라고 그러겠지만, 내가 땅을 파헤쳐 건물을 올리고 멀쩡한 건물을 부숴서 그 자리에 아파트를 짓고 하는 게 잘하는 짓인가 싶어. 이 느티나무가 베어진 걸 보면서 내가 하는 일을 돌이켜보게 되었어. 기껏 내가 한 일은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던 삶터를 없애는 짓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건물들을 짓느라 내가 베어낸 나무들이 아마 몇 천 트럭은 될 거야.” “어릴 적엔 강변에서 소를 먹이다가 버드나무 잎으로 강물을 떠먹고 하질 않았나? 그 기똥찬 물맛 생각나지? 난, 생수를 사먹을 때마다 이게 미친 세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기껏 물을 사먹는 세상을 만들자고 미친 듯이 달려온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 경제 개발이 되고 물질이 풍요하다고 해서 꼭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너무 많이 잃어버린 것 같아. 이 느티나무처럼 소중한 것들을….” “자네 말이 맞아. 내가 베어낸 나무들에게 참회하는 마음으로 한 그루의 나무라도 심고 가야겠어. 더 늦기 전에 말이야.”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느리게 선회를 하다 느티나무 그루터기에 앉았습니다. 고추잠자리는 두 친구의 말에 오래도록 귀를 기울이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김옥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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