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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북핵 실험날 손녀가 선물한 ‘평양 인형’

등록 2006-10-17 19:13

희망나무 /

“이 녀석아! 빨리 삼촌 따라가!” 그는 어머니의 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며 울부짖었습니다. 열한 살 난 아들의 엉덩이를 후려치며 어머니는 매정하게 돌아섰습니다. 피난길에 오히려 짐이 된다며 만삭의 어머니는 병든 할머니와 함께 고향집에 남았습니다. 그는 며칠만 지나면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어머니를 볼 수 있을 거라고, 갓난쟁이 동생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눈물을 꾹 참았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삼촌의 보살핌 덕분에 그는 잘 자라 가정도 꾸리고 삼촌이 물려준 공장을 탄탄하게 운영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슴에는 메울 수 없는 커다란 구멍 하나가 있습니다. 명절이 되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주체할 수가 없어 줄담배에 폭음을 합니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도 했지만 어머니의 생사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가슴속에 쌓인 절절한 한이 병을 만든 것인지, 어느 날부터 가슴이 빠개지는 듯 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 협심증 진단과 함께 수술을 받은 그는 병상에 누워 멍하니 텔레비전을 쳐다보고 있었지요. 평소보다 아주 다급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북한에서 핵실험을 강행했으며 한반도는 핵 위기의 격랑 속에 내몰려 있다는 뉴스속보였습니다. 그의 가슴에 또 한 번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습니다. 어머니의 고통스러워하던 얼굴과 피난길에서 듣던 끔찍한 폭음이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할 텐데, 이를 어쩌나 싶었습니다. 그때 병실 문이 열리더니 초등학교 4학년인 첫 손녀 혜령이가 뛰어 들어왔습니다.

“할아버지, 이거 받으세요.”, “이게 뭐냐?”, “할아버지, 이거 평양에서 온 인형인데요. 할아버지 고향도 평양이잖아요. 북녘의 문화유산 전시회에 갔다 왔는데, 할아버지 생각나서 사온 거예요. 빨리 통일이 되면 좋겠어요. 할아버지랑 같이 고구려 유적을 보러 가게요. 할아버지, 빨리 나으셔야 해요.”

고깔모자를 쓴 앙증맞은 표정의 소녀 인형과 초립동이 모자를 쓴 소년 인형이 수줍게 마주보고 서 있었습니다. 그가 어머니와 헤어졌을 때도 꼭 손녀 혜령이만 했을 무렵이었지요. 아이들이 더 이상 전쟁의 위험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의 가슴에는 빛깔 고운 한복을 입은 인형 한 쌍이 미소를 띠고 평화롭게 안겨 있었습니다.

김옥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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