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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왕따 딸’ 항의 대신 용서 보여준 아버지

등록 2006-10-24 19:46수정 2006-10-24 20:19

김옥숙/소설가
김옥숙/소설가
희망나무 /

“선생님! 이거 통닭입니다. 반 애들과 같이 잡수세요.”

이마에 주름 한 줄이 깊게 파인 정아의 아버지가 커다란 비닐봉지 세 개를 내밀었습니다.

“아니, 아버님, 뭘 이렇게 갖고 오셨습니까? 담임으로서 제가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큰 잘못을 저지른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이렇게 통닭을 갖고 오시다니,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정아가 밤늦게 통닭가게에 매달려 일하는 부모 대신 동생을 돌봐주는 착한 딸이라는 말을 남기고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중학교 1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김철호 선생은 얼마 전 정아에게 일어난 일 때문에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정아는 공부도 못하고 덤벙대었지만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친구를 보살펴주는 의외로 따스한 면도 갖고 있었습니다. 정아가 반에서 심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윤지가 시계를 잃어버린 일 때문이었습니다. 잃어버린 윤지의 시계가 정아의 책상에서 나왔습니다. 장난이 심한 영환이가 책상 위에 놓인 윤지의 시계를 정아의 책상서랍 안에 몰래 숨겨 놓았던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정아를 빙 둘러싸고 도둑이라고 욕을 하며 심하게 몰아세웠다고 했습니다. 영환이는 재미로 그런 장난을 했다고, 왕따를 당하는 아이는 무슨 일을 겪어도 된다는 식이었지요.

정작 더 큰 문제는 정아가 지난 1학기 내내 반 아이들로부터 이유도 없이 심한 왕따를 당한 일이었습니다. 정아와 말을 하거나 편을 들면 덩달아 왕따를 당하는 분위기였다고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반 전체 아이들이 정아를 따돌렸다는 것이었습니다. 반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을 까맣게 몰랐다는 것 때문에 김 선생은 심한 자괴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김 선생은 아이들에게 진심어린 사과의 편지를 써서 정아에게 전해 주라고 했습니다. 장난이 심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영환이도 정아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교실에서는 치킨파티가 벌어지고 통닭 배달 오토바이를 탄 정아의 아버지가 교문을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다른 학부모들 같으면 담임에게 심하게 항의를 하거나 자기 아이를 못살게 군 아이들을 혼내거나 한바탕 큰 소동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아의 아버지는 딸을 왕따시킨 아이들을 위해 손수 닭을 튀기고 양념통닭을 만들어 왔던 것입니다.

김 선생은 정아가 참 특별하고 멋진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용서를 통해 큰 가르침을 주고 간 멋진 아버지의 딸이었으니까요.

김옥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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