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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어머니 눈물 서린 ‘삶은 고구마 도시락’

등록 2006-10-31 19:04

김옥숙/소설가
김옥숙/소설가
희망나무 /

29년 전, 초등학교 5학년이던 혜영은 반장 남자아이와 짝이 되었습니다. 도시에서 전학 온 그 아이는 모든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지요. 검은 보리밥 같은 아이들 속에서 얼굴이 흰 그 아이는 눈부신 쌀밥처럼 보였지요. 어쩌면 혜영은 그 남자아이보다 그 아이의 도시락을 좋아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아이가 도시락 뚜껑을 열면 한겨울인데도 금방 한 밥처럼 고소하고도 더운 김이 피어올랐습니다. 계란말이쯤은 보통이었고 쇠고기 장조림에다 소시지 반찬이 모양도 예쁘게 담겨 있었습니다. 혜영의 낡은 양은도시락에는 뭉툭하고 못생긴 고구마가 서너 개 담겨 있었지요. 그 남자애 앞에서 혜영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 남자애와 짝이 되기 전에는 단 한 번도 고구마 도시락일망정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지요. 몰래 속으로만 좋아하던 남자애 앞에서 볼품없는 고구마 도시락을 열 때의 부끄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도 엄마는 보리밥 위에 고구마 서너 개를 쪄서 혜영의 도시락에 담고 있었습니다.

“엄마! 고구마 싸갖고 가기 싫어. 나도 보온도시락에 쌀밥 싸갖고 가고 싶단 말이야.”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혜영의 얼굴을 쳐다보기만 했지요. 심통이 난 혜영은 학교 가는 길에 양은도시락을 연못에다 휙 던져 버렸지요. 고구마 도시락은 살얼음이 낀 연못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낡은 양은도시락이 없다면 그 보기도 싫고 진절머리 나는 고구마를 더는 안 싸갖고 다녀도 되겠다는 생각뿐이었지요. 그날 혜영은 점심을 굶었지만 엄마의 슬퍼 보이던 얼굴이 떠올라 배고픈 줄도 몰랐습니다. 그 다음날 점심시간, 혜영은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들며 점심을 먹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운동장으로 나왔습니다. 수돗가로 가서 차가운 수돗물로 배를 채웠습니다. 하늘이 노랗게 보였지요. 누군가 혜영의 어깨를 툭 쳤습니다. 혜영이 그리도 갖고 싶어 하던 보온도시락이 엄마의 손에 들려 있었지요.

“이것아, 얼마나 배가 고팠니?”

울음을 터뜨리는 혜영을 끌어안고 엄마가 등을 토닥거렸습니다. 그날 엄마가 싸온 보온도시락 속의 하얀 쌀밥은 어쩌면 엄마의 눈물일지도 몰랐지요.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을 보는 혜영의 눈에 고구마가 들어옵니다. 물을 많이 주면 양분이 전부 잎이나 줄기로 가서 고구마 뿌리가 시원찮게 된다고 하시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이제 혜영에게 삶은 고구마는 더는 보기 싫은 음식이 아니었지요. 어머니의 사랑과 눈물의 의미를 떠올리게 만드는 귀하고 소중한 음식이 되었으니까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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