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숙/소설가
희망나무 /
인영은 위층 사람들이 내는 소음 때문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위층 사람들은 잠도 없는지 한밤중에 청소기를 돌리거나 세탁기를 돌리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위층에서 내는 소음 때문에 며칠 동안 잠을 뒤척인 인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위층 사람들과 서로 삿대질을 하며 큰 싸움을 하고 말았지요. 엘리베이터에서 위층 사람들과 마주쳐도 아는 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파트 층간소음 때문에 큰 소동이 일어나 경찰이 출동한다는 말이 이해될 지경이었지요. 하루하루가 지옥 같기만 해서 이사를 갈까 고민 중이었습니다.
인영은 오랜만에 놀러 온 친구에게 층간소음 때문에 이사를 가고 싶다고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너, 도대체 몇 번째 이사니? 결혼하고 10년 동안 한 아홉 번쯤 이사했지? 평생 이사하다 볼일 다 보겠다. 나도 임신했을 때는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런가, 작은 소음에도 못 견디고 위층 사람하고 대판 싸운 적이 있었어. 이젠 우리 아이가 하도 뛰어대는 바람에 오히려 아래층에 사는 사람들한테 미안하다니까. 지난번에 어머니 생신 때 제일 큰 떡 케이크를 주문해서 옆집하고 아래층, 위층 사람들과 나눠 먹었어.”
“아래층 사람들한테는 그렇다 치고 왜 위층에는 케이크를 나눠주고 난리니? 위층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다며?”
“우리 집 아이가 내는 소음을 참아주는 아래층 사람들을 보니까 위층 사람들 미워했던 게 너무 미안했어. 요즘은 가끔 차도 한잔씩 하고, 서로 급한 일이 생기면 아이들도 봐주는 사이가 됐어. 이웃과 친하게 지내니까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처럼 숨통이 다 트이더라니까.”
인영은 지금껏 자신이 문제로부터 늘 도망만 다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도망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지요. 냉장고 문을 열어 보니 친정엄마가 주신 도토리묵이 눈에 들어왔지요. 인영은 잠시 망설이다 도토리묵 세 모를 새하얀 접시에 담았습니다. 위층의 인터폰을 누르는 인영의 얼굴은 시험을 앞둔 아이처럼 잔뜩 긴장된 표정입니다.
“이거 도토리묵인데 드셔 보세요. 저희 친정엄마가 도토리를 주워서 직접 만드신 거예요. 지난번엔 제가 너무 심했죠. 죄송해요.” “아니에요. 저희들이 조심했어야 하는데. 제가 밤늦게 퇴근하는 직장에 다니는 바람에 집안일을 밤에 할 수밖에 없었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위층 아줌마가 돌려준 접시 위에는 홍시 일곱 개가 예쁘게 담겨 있는 게 아니겠어요. 김옥숙/소설가
“이거 도토리묵인데 드셔 보세요. 저희 친정엄마가 도토리를 주워서 직접 만드신 거예요. 지난번엔 제가 너무 심했죠. 죄송해요.” “아니에요. 저희들이 조심했어야 하는데. 제가 밤늦게 퇴근하는 직장에 다니는 바람에 집안일을 밤에 할 수밖에 없었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위층 아줌마가 돌려준 접시 위에는 홍시 일곱 개가 예쁘게 담겨 있는 게 아니겠어요. 김옥숙/소설가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